80만원 월급 둘로 쪼개 노인 일자리 늘린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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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취업자 26만명 증가의 허상]
재정 투입… 노인 취업 58만명으로
단시간-저임금 일자리 늘려놓고… 홍남기 “고용부진 벗어나는 모습”

서울의 한 고교에서 7년간 청소일을 해 온 양모 씨(72)는 올 1월 일을 그만둬야 했다. 구청에서 위탁받아 양 씨를 고용한 용역업체에서 “한 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으로 늘려야 한다”면서 근무시간을 오전, 오후로 나누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월급은 그 전의 절반인 40만 원. 양 씨는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냈다.

그는 “학생들이 ‘도우미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라주기도 해서 보람을 느꼈는데 한동안 상심이 컸다”고 했다. 양 씨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통계상으로는 일자리가 2개가 됐다.

정부 재정 투입으로 60대 이상 노인 일자리가 늘면서 추락하는 고용통계를 떠받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 씨 사례처럼 일자리를 여러 개로 쪼개거나, 저임금·단시간 일자리가 상당수를 차지해 통계 착시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필요한 인력을 과다하게 고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올 2월부터 서울의 한 구청 산하 지역아동센터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박모 씨(79)는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청소하는데 2, 3명이 같이하는 것도 모자라서 하루에 2, 3개 조가 돌아가면서 일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제대로 일했는지 조사하는 사람도 없다. 센터 관계자에게 일했다고 사인해 달라고 말하면 그냥 해준다”고 전했다.

일자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저임금 일자리도 상당수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실버택배나 경로당 카페 등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형 일자리의 절반가량은 월평균 25만 원 미만을 받는다. 5월 말 기준 시장형 일자리에 채용된 5만4864명 중 46.1%가 이에 해당된다.

일자리를 쪼개거나 인력을 과잉 투입하면 고용통계는 호전된다. 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노인 일자리 수는 1월 11만 개에서 5월 58만6000여 개로 뛰었다. 5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25만9000명 늘어나 20만 명대를 회복한 것도 노인 일자리 덕분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고용통계가 나오자 “고용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올 한 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총 1조6487억 원을 투입해 6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김준일 기자

#노인 일자리#저임금#단시간#고용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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