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보조금 첫 심사에 ‘삼성 공장’ 포함… “기술유출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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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전접수하는 최첨단공정 부문
稅지원 미끼로 원료 현황도 요구
삼성-TSMC 기술 파악용 의구심
인텔에 핵심정보 넘어갈까 우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서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신규 파운드리 공장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총투자 170억 달러 중 이미 일부를 집행했는데 미국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에 여러 조건이 붙으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테일러시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서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신규 파운드리 공장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총투자 170억 달러 중 이미 일부를 집행했는데 미국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에 여러 조건이 붙으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테일러시 홈페이지
미국이 527억 달러(약 68조9000억 원)를 투입해 추진하는 반도체 지원정책 세부 기준 발표 후 국내에서는 핵심 산업기술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정부가 경제·안보 목적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에 접근할 근거를 만들거나, 개별 기업의 회계장부나 공급망 전략을 들여다보겠다는 조항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세제 지원’이라는 미끼를 던진 뒤 결국 ‘기술 확보’를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미국 자체 공급망 강화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 상무부가 공지한 반도체과학법의 보조금 신청 일정 및 지원 기준에 따르면 핵심은 이달 31일부터 사전 접수하는 최첨단 공정(Leading-edge) 부문에 있다. 미 정부가 내놓은 최첨단 공정의 기준은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미만으로 4나노, 3나노급 선단공정을 우선순위로 심사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발표에서 최첨단 공정을 중심으로 2030년까지 자국 내 최소 2개 이상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현재 대만 TSMC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공장에서 내년 가동을 목표로 4나노 공정을 준비하고 있다.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신공장을 짓는 삼성전자는 올 1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하반기(7∼12월) 4나노 양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최첨단 공정부터 심사에 들어간 것은 결국 파운드리 양대 산맥인 TSMC와 삼성전자를 포섭하려는 노림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반도체법 지원을 받을 경우 미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무부는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직접 검증하고 주요 고객 및 생산 제품, 원료 현황까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또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시설 접근을 열어둔 기업을 우대한다고 밝혔다. 기밀로 여겨지는 생산시설을 보여주면 혜택을 주겠다는 뜻이어서 기업들의 기술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2021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의 재연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당시 삼성전자,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불러 모아 45일 안에 재고, 판매, 수요 등 민감 영업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정보를 취합해 반도체 병목현상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기업들이 기밀 유출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TSMC가 먼저 구체적인 고객사 등 민감 정보를 제외한 채로 제출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막판까지 공개 수준을 고민한 끝에 최소 한도의 자료를 시한에 맞춰 냈다.

현재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미 정부를 통해 국내 반도체 기업의 핵심 정보가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지난해 말 4나노 생산에 나설 채비를 마치고 3나노 공정에도 돌입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수율이나 제품 품질 면에서 삼성전자와 TSMC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의 이번 요구가 2년 전보다 더 심각한 부담으로 느껴진다”며 “기술 정보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게 제일 위협적이고 제품 수율, 투자 내역, 현금 흐름까지 다 내놓으라고 하니 경쟁사 활용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했다.

전기차 공급망의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해서도 이달 중 세부 방침 발표를 앞두고 기밀 유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지난해 말 미 정부가 ‘예고편’ 격으로 내놓은 백서를 보면 공정 과정에서 포함되는 광물 비중을 평가할 때 어떤 과정을 거쳐 가공됐는지 면밀히 살펴볼 수밖에 없도록 돼 있다.

최근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이 합작 공장 설립에 나선 것도 결국 CATL의 기술 협력이 전제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 기술 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고강도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IRA에서 미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려면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을 어디에서 얼마나 채굴했는지, 이어 어떻게 1·2차 가공해 부가가치가 발생하는지 등 모든 과정을 심사받아야 한다”며 “상세하게 들여다볼 경우 사실상 기업 기밀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 섣불리 발을 들이는 게 맞을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반도체 보조금#삼성 공장#기술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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