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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재명 아빠! 나, 개딸”…‘어버이 수령’보다 불편한 정치현상

입력 2022-05-15 14:53업데이트 2022-05-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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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 이재명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대선에서 패한 다음 외려 더 많은 지지자가 생겼다. “재명 아빠, 사랑해요”를 외치는 자칭 ‘개딸’들이다.

더불어민주당 6·1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이자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민주당 후보가 된 그가 14일 “소위 ‘개딸’, ‘양아들’ 현상이란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촛불혁명’을 능가하는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재명이 5년 뒤 대통령이 된다면(가정법을 썼다) 이번 발언은 역사에 남을 것이 틀림없다.

14일 인천 계양구 선거사무소에서 연설하는 이재명 민주당 인천 계양을 후보. 인천=뉴시스


● 이재명을 위한 일상적 ‘개딸 혁명’

자신의 인천 계양구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된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 서포터즈와의 미팅에서 이재명은 ‘개딸 혁명’에 대해 이렇게 의미 부여를 했다. “촛불혁명에서 단기적으로 결정적 시기에 집단적 행동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일상적으로 (개딸들의 집단적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역사의 현장에 계신 분들이다.”

이 말은 곧, 지금 이재명과 함께 있는 개딸들이 바로 대세를 만드는 역사적 현장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즉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의미인 것은 물론이다).

‘개딸’이란 ‘개혁의 딸’, ‘양아들’은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라고 이재명을 지지하는 2030은 주장한다. 참, 말을 잘도 만든다. 하지만 본래 개딸이란 드라마 ‘응답하라’에서 성동일 아빠와 지긋지긋하게 싸우는 ‘성질 X 같은 딸’에서 나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드라마 ‘응답하라1997’의 한 장면. 이른바 ‘응답시리즈’는 ‘개딸’이라는 표현의 원조로 불린다. 극중 아빠(성동일 분)가 매일처럼 투닥거리는 딸을 부를 때 쓰는 애증의 표현이다. 유튜브 ‘tvN D Studio’ 캡처


● 2030 여성들이 이재명을 지지한다?!

이재명의 대선 패배가 유력해진 3월 10일 새벽, 인터넷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이 나타났다. 자칭 ‘개딸’이라는 2030 여성회원은 이재명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힘내라” “사랑해요” 하트 뿅뿅을 날렸다. 이재명은 여초 사이트에 들어와 보고, ‘불꽃추적단’ 박지현을 영입하는 등 여성 문제를 고민하는 ‘성의’라도 보였고, 이들이 이재명의 막판 스퍼트에 힘을 보탰다는 점은 나도 평가한다.

K컬처에 익숙한 개딸들에게 이재명은 좀 늙었지만 귀여운 아이돌이다. 정치인이면 어떤가. ‘대통령으로 키워보세~~’ 이후 이재명은 젊음을 되찾았다(‘회춘’이라고 쓰면 성차별적 표현인가? 못 쓰게 하면 ‘표현의 자유’ 훼손인가?). 개딸 팬덤이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만들었다. 이재명이 6·1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소환된 것도 팔 할은 개딸 덕분일 터다.

이재명 계는 신이 났다. 지지층에 ‘개혁’ 돌림자를 붙여 ‘개이모’ ‘개삼촌’ ‘개할머니’ ‘개할아버지’라고 한없이 확장한다. 하나의 팬덤을 공유하는 서로가 ‘가족’과 같다며 ‘개가족’이라고 붙여버렸다. 글쎄, 자기들끼리는 너무나 재미있는지 몰라도 그들 눈에는 전 국민이 개로 보이는 모양이다.

트위터 등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며 ‘인증’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3월 24일 한 사용자가 올린 인증 사진의 일부. 트위터 캡처


● 자유민주국가에서 시민이 정치인에게 “아빠”?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잠깐, 제발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임금님도 아닌 공무원(대통령도 세금으로 봉급 받는다)에게 나이 먹은 성인여성이 “아빠” “아빠” 하는 게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성동일 아빠가, 공부는 48명 중 48등이면서 핫인지 HOT인지 사진 속 토니한테 오빠, 오빠 하는 딸 때문에 환장을 했거늘,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했던 문재인 정권 5년을 간신히 살아 넘겼는데, 이제 ‘아빠, 사랑해요’ 라니, 이 무슨 북한의 징그러운 남한판 버전인가 말이다.

정치인 이재명을 “아빠”라고 부르는 개딸이면, 그가 잘못된 정치를 할 때 감히 비판을 할 리 없다. 드라마 ‘응답 시리즈’에선 딸이 아빠한테 길길이 대들기라도 했지만 ‘재명이네’에선 어림도 없다. 무조건 사랑, 엎어진 순종만 있을 뿐이다. 만일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면 ‘개딸 믿고 독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컨대, 개딸이란 팬덤 현상은 노사모나 문빠보다 더 퇴행한 정치타락이 아닌가 싶은 거다.

10일 이재명 후보가 윤환 계양구청장 후보 사무실을 방문해 지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경제가 유통이듯, 운동권에게 정치는 조직이다. 당연히 이들 뒤에는 시위를 조직하는 노련한 정치꾼들이 있다고 본다. 순진한 개딸들만 모를 뿐이다.

아니, 정치에 관심 없던 2030 여성들이 이제라도 정치에 관심 갖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성인이 되면 아주 급한 상황에서만 부모를 찾아야 하듯, 일상의 민주주의 운영은 정치가와 정당에 맡겨야 한다. 최근 나온 책 ‘우리안의 파시즘 2.0’ 속의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정치’에서 박상훈 정치발전소학교장이 조근조근 설명한 내용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적법한 대표에게 ’일정 기간‘ 일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일을 계속 맡길지, 아니면 다른 대표를 고용할지 결정하는 체제다. 국민은 최종결정자이지, 이 글 맨 앞에서 이재명이 개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일상적으로 평가해 내쫓으려 들진 않는다. 만일 그래야 한다면 적대와 대립, 증오와 배제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 민주주의 파괴까지 닮지는 말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걸 ‘촛불혁명’이라고 했지만 동의 못 한다. ‘개딸’ 혁명? 절대 동의 안한다. 과거 독재 정권이 광장에 관제 시민단체를 동원해 열었던 시위들만 연상될 뿐이다.

개딸들의 순수한 ‘취미생활’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북한에선 아버지를 수령으로, 당은 어머니로, 인민은 자녀들로 상징화해 ‘사회주의 대가정’으로 상상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려주고 싶다(논문 ‘북의 국가담론;봉건적 가부장에서 젠더화된 민족국가로’).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사악한 의도를 갖고 북한의 사회주의 대가정을 ’개가정‘으로 변형시킨 것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은 퇴폐성 TV드라마를 일제히 끝내버린 적이 있다. 늙은 사장이 젊은 호스티스에게 아파트를 사주는 대목에서 조기 종영이 돼버렸는데 드라마 제목이 ‘아빠’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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