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밥을 사는 문화는 아주 낯설다. 그런데 공직사회 일부에선 6∼9급 공무원이 돈을 갹출해서 간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간부 모시는 날’이 있다. 팀마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국·과장에게 정기적으로 식사 대접을 하는 날이다. 아직도 이런 악습이 남아 있나 싶다. 그 유래를 알고 보면 더욱 씁쓸하다. 과거 현장에서 민원인으로부터 받은 뒷돈으로 국·과장을 챙기던 데서 간부 모시는 날이 생겨났다고 한다.
▷간부 모시는 날은 점점 사라졌지만 중앙부처보다 감시가 헐거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부 모시는 날을 1년 이내 경험한 비율이 중앙부처는 0.4%지만, 지자체는 3.4%였다. 지난해 A구청에선 한 국장이 5개 과에 순번을 정한 점심 일정을 통보하고 식사를 대접하도록 강요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식후 커피까지 대접받은 데다 저녁 술자리까지 종종 직원들을 동원해 원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B구청에서도 “국·과장님, 제발 그만 좀 해달라”는 익명 폭로가 있었다. 그 지역 구의회 의원이 해당 간부들을 면담했더니 “어떻게 밥을 혼자 먹습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간부는 매달 팀마다 한 번씩 식사를 하는 것이지만 최소 5, 6명은 모셔야 하는 아래 직원들의 고충은 상당하다. 보통 막내 직원이 ‘밥 총무’를 맡기 마련이다. 국·과장이 선호하는 메뉴나 식당을 정리한 족보를 참고해 간부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파악하고, 전날 다른 부서가 갔던 식당을 피해 예약을 한다. 월급도 적고, 연금도 깎인 젊은 공무원들은 월 10만 원쯤 된다는 품앗이 비용이 부담스럽다. 점심시간까지 업무의 연장이 되는 것도 불만이 크다. 하지만 인사권이 있는 국·과장의 심기를 괜히 거스를까 관행에 반기를 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간부 모시는 날은 낡은 관행이 아니라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하는 부패 행위다. 인사권을 가진 간부가 직원의 사비로 식사를 대접받는 건 금품 수수 행위이고, 식당에 가기 위해 직원이 차를 운전하도록 시킨다면 사적 노무를 요구하는 행위이다. 내부 식사에는 쓸 수 없는 업무추진비를 종종 유용하는 것도 문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달부터 두 달간 간부 모시는 날을 집중적으로 신고받기로 한 걸 보면 아직은 뿌리가 덜 뽑힌 듯하다.
▷공직사회에는 수습 기간이 끝나면 사비로 돌리는 ‘시보떡’, 부서장 인사가 나면 새 부서로 간식을 들고 인사를 가는 ‘전입떡’ 같은 납득하기 힘든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악습을 MZ세대 공무원과의 갈등이나 오래된 관행쯤으로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부패는 부패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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