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쟁 실무 최전선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
쉰들러 사건 승소 소식 접하자마자… 20여 시간 경유해 유엔 회의장 날아가
‘팝업 세미나’로 3연승 노하우 공유… K팝이 우리나라 위상 드높인 것처럼
국제중재 분야에서 ‘우리 법 제도, 합리적-선진적’ 인식 구축하려 노력
13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국제법무국 회의실에서 만난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은 “지금처럼 국제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내가 어떤 국가에 속해 있느냐, 그리고 국가는 어떤 역량과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국제중재 분야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스위스 엘리베이터업체 쉰들러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3연승을 거뒀다. 길게는 13년, 짧아도 8년 가까이 이어졌던 분쟁에 마침표를 찍는 쾌거였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실무를 지휘하고 있는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43)은 지난달 14일 오전 2시경 나온 쉰들러 사건 승소 판정을 접한 직후 기뻐할 겨를도 없이 같은 부서 염호영 검사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했다. 지난달 23일부터 빈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제3작업반 54차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각국 대표단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회의 참가자들에게 ‘ISDS 3연승의 노하우’를 알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묘수를 냈다. 제도 개선을 주로 논의하는 공식 회의에선 발표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라 점심시간을 쪼개 비공식 세미나를 열고 한국의 ISDS 대응체계 우수성을 발표하기로 한 것. 13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조 과장을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 봤다.》
―어떻게 세미나를 기획하게 됐나.
“ISDS 사건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나라가 많을 것 같아 쉰들러 사건 승소 직후 UNCITRAL 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직항은 당연히 매진이었고, 이란 사태 때문에 중동을 경유하는 유럽행 비행기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염 검사와 둘이 20시간 넘게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겨우 구해 회의에 참석했다. 동시에 한국에 있는 우리 과 직원들도 협업하며 많이 도와줬다.” ―세미나 반응은 어땠나.
“팝업 스토어처럼 기획한 세미나라 당일 현지에서 급하게 홍보해야 했다. 10명 정도 참석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미국, 영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20여 개국에서 45명 가까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질문도 많이 나왔다. 로펌과 어떻게 업무 분담을 했는지, 의사결정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자세한 내용을 묻기도 했다.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보람이 컸다.”
세미나에선 한국 정부의 ISDS 3단계 대응 체계를 소개했다고 한다. 거시적 전략을 결정하는 부처 간 고위급 회의, 실무 차원에서 협업하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 사건 수행을 담당하는 법무부 국제법무국 국제투자분쟁과까지 정부 내에 자리 잡은 시스템을 설명한 것. ―ISDS 연승 이후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나.
“분쟁이 생기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날수록 분쟁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제 투자가 많아지면서 세계적으로 ISDS 사건도 늘고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한국을 상대로 ISDS를 내더라도 이기기 쉽지 않겠다는 인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처럼 국제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내가 어떤 국가에 속해 있느냐, 그리고 국가는 어떤 역량과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을 상대로 ISDS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인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외국인 투자가 입장에선 안전판이 필요하다. 부당한 타국의 조치로 손실을 입었을 때 문제 삼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어선 안 된다. 너무 위축시켜 버리면 외국인 투자가가 우리나라에 아예 투자 자체를 안 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분쟁 대응과 투자 유치 모두 잘해야 한다.”
론스타가 2012년 11월 우리나라를 상대로 처음 ISDS를 제기했을 때만 해도 법무부가 주무 부처였지만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 보니 관계 부처인 국세청과 금융위원회와의 효율적인 소통이 쉽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정부는 2019년부터 국제 분쟁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조직 개편을 이어 왔다. 예전에 법무실 국제법무과 1개 과가 담당했던 업무를 세분화하기 위해 2020년 8월 법무실 국제법무과와 국제분쟁대응과로 나눴다. 2023년 8월엔 국제법무국을 신설해 산하에 국제법무정책과, 국제법무지원과, 국제투자분쟁과 등 3개 과 체제로 확대했다.
국제법무국을 컨트롤타워 삼아 ISDS 관계 부처와 외부 로펌 간 소통을 조율하고 대응 전략을 총괄하면서 이른바 ‘K-ISDS’ 시스템을 갖춰 나갔다. 앞서 유엔 회의 세미나에서 만난 각국 대표단도 “부처 간 조율을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부처 간 효율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부임한 조 과장은 전임자 김지언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총괄기획교수에 이어 두 번째 국제투자분쟁과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재임 중 ISDS 승소를 예상했나.
“전임자였던 김지언 선배님이 ‘힘든 과정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고 이젠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거다’라고 하셨는데, 언제 결과가 나올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평검사 시절엔 국제법무 업무를 맡을 기회가 없었다.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3년 근무했고, 형사부 사건이나 범죄수익 환수, 지식재산권 관련 사건 위주로 맡았던 터라 내가 이 업무를 하게 될 거란 생각은 못 해 봤다.” ―해외에서 공부한 경험도 없었나.
“운 좋게 해외 유학 기회를 얻어 미국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1년간 법학석사(LLM) 과정을 들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공공정책대학원) 국제관계 수업을 듣기도 했다. 국제법무국에는 미국이나 영국 로스쿨 LLM을 취득하고 해당 국가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검사가 여러 명 근무하고 있다.” ―ISDS 대응 시 로펌과 업무 분담은 어떻게 하나.
“우리는 분쟁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정부 부처들과 소통하며 단계별로 무슨 내용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조언도 해준다. 부처와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국내 로펌과 다시 소통하며 중재판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국외 로펌이 이 내용을 받아서 중재판정부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국제투자분쟁과에는 나를 포함한 검사 4명과 사무관 3명, 법무관 2명, 전문위원 2명, 일반직 2명이 있다. 이 중에서 일반직을 제외하면 모두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사건이 워낙 많고 같은 강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건 타임라인에 따라 업무량이 다르기 때문에 검사들이 나눠서 팀장을 맡아 나머지 팀원들과 실무를 분담한다.” ―검사는 2년마다 인사 발령이 나지 않나.
“경우에 따라선 장기 근속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론스타와 쉰들러 사건을 담당한 양준열 검사는 규정에 따라 2년 유임이 돼서 4년째 근무하고 있고, 엘리엇 사건을 맡은 민경원 검사도 3년째 근무 중이라 후속 절차까지 이어서 할 예정이다. 사건을 잘 알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계속 남아 있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수치화할 수 없는 공적인 마인드다. 개인이 자기 이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오히려 그게 무능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내가 이 일을 해서 잘돼 보겠다는 게 아니라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처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다. 로펌이 알아서 하게끔 맡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느냐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의 자체적 역량과 실력이 중요한데 검사들이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올해 1월 22일 미국 쿠팡의 주주인 미국 국적 그린옥스 유한회사와 알티미터 유한책임조합은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조사로 피해를 입었다며 ISDS 중재의향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중재의향서 제출 뒤 90일 이후 정식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데 이달 22일로 제출한 지 90일이 지나게 된다. 법무부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함께 적법 절차에 따라 대응하는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다른 ISDS 사건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추진하던 이란 다야니 가문이 2021년에 제기한 2차 ISDS가 정식 중재가 들어와 진행 중이다. 중국인 투자자가 제기한 ISDS 사건은 2024년 6월 우리가 전부 승소했는데 이걸 취소해 달라는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그동안 ISDS를 여러 건 겪긴 했지만 정부가 협업을 해서 시스템을 갖췄다. 국가가 최소한 부담할 수 있는 법률 비용을 예산으로 편성해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ISDS에서 승소해 국민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도록 만든 게 한국의 저력이다.”
조 과장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2012년 11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한 이래 법무부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의 이름을 한 명씩 짚어가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법무부에서 여러 명의 검사가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마침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는 지금에서야 ISDS 사건들이 결과가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개인 한두 명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사건 하나에 대응하며 잠도 못 자고 고민했던 순간들, 묵묵히 일했던 10년 넘는 세월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임기 중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실 여기에 와서 새로 생긴 목표가 하나 있다. 민사 형사 행정소송이 있듯이 국제중재 분야에선 크게 상사중재와 투자분쟁이 있다. 그런데 국제중재 분야가 생각보다 인력 풀이 넓지 않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조금만 공들여서 노력하면 한국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거다. K팝 같은 한국의 문화가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세계 곳곳에 알린 것처럼 우리나라 법 제도의 합리성이나 선진성을 국제중재 분야에 최대한 알리고 설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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