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은 말에게 가고, 겨는 사람에게 간다. 사회가 뒤집혔다는 표현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할 수 있을까. 한유의 시는 그 불편한 장면을 들이민다. 말은 곡식이 물릴 만큼 배불리 먹는데, 선비는 겨조차 마다하지 못한다. 저들의 집 안 치장은 화려한데 선비는 해진 옷 하나 변변치 않다. 시인은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서 모티프를 끌어왔다. 거기에는 죄를 얻어 쫓겨나는 재상이 문객들에게 누가 따라가겠느냐고 묻자, 한 사람이 “평소엔 개와 말만 배불리고 선비는 돌보지 않으면서, 어찌 위급할 때 목숨을 바치라 하느냐”고 되묻는 대목이 나온다. 시인은 바로 그곳을 찔렀다. 잘나갈 때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다가, 막상 형편이 기울면 인재의 절개부터 찾는 세상. 그는 점잖게 타이르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혀를 차듯 말을 끊는다. 저들과는 더 말 섞을 가치조차 없다는 탄식이다. 이 냉소는 한 시대의 풍자에 그치지 않는다. 무너지는 조직의 징후도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제 재물은 아끼고 충성만 요구하는 곳, 그곳에 남는 것은 존경이 아니라 냉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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