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빈정거림[이준식의 한시 한 수]〈364〉

  • 동아일보

말은 곡식에 싫증을 내는데, 선비는 겨조차 마다하지 못한다.

흙벽에는 비단 장식이 둘러졌는데, 선비에게는 짧은 베옷조차 없다.

저들이 뜻을 얻었을 때에는 나를 돌아보지 않더니,

하루아침에 뜻을 잃고 나면 그 꼴이 또 어떠하겠는가.

그만두자. 아아, 이 비루한 자들이여.

(馬厭穀兮, 士不厭糠籺. 土被文繡兮, 士無裋褐. 彼其得志兮, 不我虞.

一朝失志兮, 其何如. 已焉哉, 嗟嗟乎鄙夫.)

―‘곡식이 싫증난 말(마염곡·馬厭穀)’ 한유(韓愈·768∼824)


곡식은 말에게 가고, 겨는 사람에게 간다. 사회가 뒤집혔다는 표현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할 수 있을까. 한유의 시는 그 불편한 장면을 들이민다. 말은 곡식이 물릴 만큼 배불리 먹는데, 선비는 겨조차 마다하지 못한다. 저들의 집 안 치장은 화려한데 선비는 해진 옷 하나 변변치 않다. 시인은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서 모티프를 끌어왔다. 거기에는 죄를 얻어 쫓겨나는 재상이 문객들에게 누가 따라가겠느냐고 묻자, 한 사람이 “평소엔 개와 말만 배불리고 선비는 돌보지 않으면서, 어찌 위급할 때 목숨을 바치라 하느냐”고 되묻는 대목이 나온다. 시인은 바로 그곳을 찔렀다. 잘나갈 때는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다가, 막상 형편이 기울면 인재의 절개부터 찾는 세상. 그는 점잖게 타이르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혀를 차듯 말을 끊는다. 저들과는 더 말 섞을 가치조차 없다는 탄식이다. 이 냉소는 한 시대의 풍자에 그치지 않는다. 무너지는 조직의 징후도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제 재물은 아끼고 충성만 요구하는 곳, 그곳에 남는 것은 존경이 아니라 냉소다.

#한유#곡식#선비#사회 변화#유향#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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