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선수는 한 번 달아보기도 힘든 태극마크를 15살 때 달았다. 17살 때는 호주 퍼스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접영 200m에 나가 역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결선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자유형과 접형, 개인 혼영 등 각 종목 한국신기록도 세웠다.
메이저 국제종합대회인 아시안게임에도 3번이나 출전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 때는 각각 4개씩의 동메달을 획득했다. 총 11개의 동메달로 그보다 국제대회에서 많은 동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없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 접영에서 물살을 가르는 한규철. AP뉴시스
하지만 ‘수영 천재’ 한규철(45)에게는 최악의 성적이자 시나리오였다. 평생 목표로 했던 금메달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2002년 부산 대회 때 그는 접영 100m와 200m, 그리고 자유형 8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땄다. 만약 그가 접영 대신 자유형을 나갔다면 무난히 금메달을 땄을 것이다. 2002년 부산 대회를 앞두고는 몸을 좀 더 가볍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5kg를 무리하게 감량한 게 오히려 독이 됐다. 한규철은 “방콕 대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유형에 집중했는데 너무 살을 많이 빼는 바람에 정작 경기 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았다”고 했다.
2006년 도하 대회 때는 한국 수영의 최고 스타인 박태환에 밀려 자유형에 출전하지 못했다. 한규철은 “세 대회 연속 실패하고 나니 금메달을 딸 운명이 아닌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에 의미 없는 실업 선수 생활을 몇 년 더 했지만 열정이 살아나질 않았다”고 했다.
목표를 잃은 그는 급격히 무너졌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동안 살아온 모든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90kg대였던 몸무게가 120kg을 넘었다.
설상가상으로 투자를 잘못하는 바람에 그나마 벌어놓은 돈도 많이 날렸다. 10대부터 20대까지 최고의 수영 선수로 불렸던 그는 한순간에 생활고를 겪는 처지가 됐다. 한규철은 “창창한 30대 초반에 모든 것을 잃는 기분이었다.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없었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았던 것 같다”라고 했다.
수영 코치 시절의 한규철의 모습. 식스팩이 선명하다. 한규철 제공보다 못한 선배가 그를 다시 수영장으로 이끌었다. 어린 선수들이라도 지도해 보라는 것이었다. 역설적으로 큰 상처를 줬던 수영장이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자신부터 건강해야 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던 그가 불굴의 의지로 약도 끊었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불과 4개월 만에 30kg 이상을 감량했다. 그렇게 그는 몇 년 만에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인’이 됐다.
한규철은 “당시 가르쳤던 제자들이 너무 좋았다. 하나를 가르치면 실력이 쑥쑥 늘었다. 다른 사람이 잘했는데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30대 중후반에 내 열정을 다시 불사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한규철(윗줄 왼쪽)이 제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한규철 제공 오전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시 오후에 가르칠 때까지 시간이 비면 그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렸다.
‘헬창’(헬스를 통해 몸 불리기에 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행하는 ‘3대 500’(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량을 합쳐 500kg의 무게를 드는 것)도 거뜬히 돌파했다. 스쾃은 190kg, 데드리프트는 200kg, 벤치프레스는 135kg을 들었다.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11개를 딴 전 ‘수영 천재’ 한규철은 현재 한 숙성 고기 전문전 대표로 일하고 있다. 한규철이 고기 손질을 하고 있다. 한규철 제공 40대 중반이 된 그는 현재 수영장을 떠나 자영업자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숙성 고기 전문점 신도세기 대표가 그의 직함이다. 한규철은 “더 늦기 전에 평생 몸담았던 물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수영 코치 생활은 그리 나빴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불안정한 생활을 할 순 없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좀 더 어리고 열정이 살아있을 때 ‘사회생활’에 뛰어들어보고 싶었다.
자영업 초창기 한규철의 모습. 한규철 제공
그렇게 처음 서울 강남구 신논현동 근처에 냉동 삼겹살집을 오픈했다. 약 2년을 버텼지만 성공했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는 “약 2년 정도 하나가 폐업을 했다.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준비했었다”라며 “요식업도 잘 짜인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 2023년 가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신도세기를 오픈했다. 이번 가게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점심 메뉴인 갈비탕과 달지 않는 불고기는 동네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32개의 테이블이 있는 약 330㎡ 크기의 매장은 15~18명의 직원들로 바쁘게 돌아간다. 손님이 밀려들 때면 그도 대표 명함을 떼고 고객 응대와 서빙을 한다. 고기를 직접 굽기도 한다.
손에 빌 때는 고기 손질도 직접 한다. 처음엔 칼질에 익숙하지 않아 손을 베는 바람에 응급실에도 몇 번 갔다. 한규철은 “수십 년간 대우받는 선수, 지도자로 살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만나고 있다. 처음엔 손님한테 인사하는 게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내 주변의 모든 분들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꾸준한 운동은 한규철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 한규철 제공
여전히 그를 지탱하는 건 운동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매장에 나가기 전까지 그는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한다. 지금도 여전히 주 1, 2회는 ‘3대 500’을 든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러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에 기본 10km 정도를 뛴다. 주말에는 20km 정도의 장거리 러닝도 한다. 그는 “가게에서 머리가 복잡한 일이 있어도 땀 날 때까지 뛰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라며 “한동안 괴롭히던 불면증도 사라졌다. 역시 운동은 평생 하는 게 맞다는 걸 새삼 실감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규철의 최근 모습.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수영과 육상은 완전히 다른 종목이다. 하지만 ‘엔진’은 똑같기에 그는 초보 러너임에도 기록이 쑥쑥 좋아지고 있다. 그는 벌써 하프 마라톤에 출전해 1시간 30분대에 안에 골인했다. 그는 조만간 풀 코스도 달릴 생각이다. 지금 추세라면 서브 3(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안에 주파하는 것)도 충분히 노려볼 만 하다.
내친김에 그는 철인3종(수영, 사이클, 마라톤)까지 고려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수영은 그에겐 편안한 종목이다. 한규철은 “지금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려 한다”며 “현재는 요식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몸과 마음을 바쳐 뛰어들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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