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참사도 무책임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 동아일보

여객기 참사 수습 부실 논란 또다시 증폭
조사 지연-자가 검증에 유족 불신 깊어져
제대로 조사 못하면 책임자 처벌도 어려워
독립조사 의무화해야 더 이상의 상처 없어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2024년 무안공항에서 179명이 목숨을 잃은 ‘12·29 여객기 참사’의 기체 잔해물 추가 조사 과정에서 희생자 유해가 잇따라 발견됐다. 참담한 일이다. 모자이크된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내 가족, 내 지인의 뼛조각이 그 황량한 곳에 1년 넘게 방치돼 있었으리라 상상하니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이 발생했을까? 시작부터 문제였다. 현장을 처음에 정리할 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현장 잔해를 그저 마대 자루며 톤백(ton bag·1t짜리 대형 비닐 자루)에 쓸어 담았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자루 속에서 유해가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179명이 동시에 숨진 사고 현장을 신중하게 수습하며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부터도 납득이 어려운데, 빠짐없이 다 쓸어 담지조차 못해 추가 발견이 잇따른다.

그토록 서둘렀다고 사고 원인이 제대로 규명된 것도 아니다. 항철위 조사의 중립성 문제가 대두돼 조사 결과 발표가 지연됐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직후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와 콘크리트 둔덕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으나, 얼마 전 감사원의 감사 결과 무안공항의 둔덕은 국제기준을 미달한 시설임이 밝혀졌다. 현장 조류퇴치반의 규모나 대상 조류 선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올해 1월에야 국회의 국정조사가 이뤄져 특별위원회가 현장 조사를 나갔는데, 현장 조사 전 유족 동의 없이 잔해물이 치워졌고, 조사단 방문 전까지는 없었던 방수포가 뒤늦게 덮여 있었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사고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리라 신뢰하기 어려운 정황이다. 정부를 불신하는 유족이 잘못이 아니라, 불신할 수밖에 없게 일을 처리하는 쪽이 문제다.

‘사고의 원인을 알고 싶다’, ‘가능한 만큼이라도 유해나 유품을 찾고 싶다’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이렇게 지난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더 믿을 수 없는 점은 지금까지 많은 대형 참사가 이렇게 흘러왔다는 사실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전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있었다. 누구나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인재가 일어나도, 제대로 조사되지도 수습되지도 않은 채 시간이 흐른다. 현장은 훼손되고 희생자의 가족들은 망연함과 죄책감에 고통받는다.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으니 사고 책임자를 찾기 어렵고, 설령 찾아내도 그 책임자에게 책임을 지우기도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에 시행됐으나 중대시민재해로 기소된 첫 사례는 2025년에야 있었다. 3년간 중대시민재해로 볼 사건이 전무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부부터 대형 참사를 적당히 묻고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재빨리 외면하니, 그에 호응해 유가족의 보험료가 얼마라느니 세력이 끼어 설친다느니 하는 말을 주워섬기며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법, 행정, 사회 어느 쪽의 보호도 받지 못한 유족들은 결국 옷에 리본을 달고 광장에 서게 된다. 그 방법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번 발의된 ‘생명안전기본법’은 이 반복된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모든 사람이 안전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기본법으로 명문화하고, 안전사고 발생 시 독립조사기구가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사를 하도록 하는 기준을 정하고자 한 것이다. 초기 조사는 12·29 여객기 참사를 포함한 모든 대형 참사에서 문제가 돼 온 부분이다. 이번에도 국토부 산하인 항철위의 ‘셀프 조사’에 많은 문제가 제기됐다. 숱한 지적과 노력 끝에 항철위는 올해 2월 28일부터 국무총리 산하 독립조사기구가 됐다. 그러나 다음에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대형 참사는 또 어찌할 것인가? 조사의 독립성을 기본법으로 정하지 않으면 각 참사의 희생자들은 매번 같은 투쟁과 고통을 반복해야 한다. 이것이 비인도적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상처와 낭비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두 번 다시 이런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사고가 대형 참사로 번지는 것을 막는 일, 그리고 참사가 발생했을 때 진상 규명과 피해자 및 공동체의 회복은 우리 모두의 존엄하고 안전한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12·29 여객기 참사는 유족들이 개별적으로 싸워야만 했던 마지막 사건이 돼야 한다. 제대로 다시 조사하고, 책임 있게 현장을 수습하고, 유족과 시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제발 이번에는 끝까지 제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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