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러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불어나기도 한다. 이덕무의 시간과 최북의 시간은, 정약전의 시간과 김광석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진다.”
―김애란 ‘여름의 속셈’ 중
최승연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내 나이 서른다섯. 엄마는 서른다섯에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까? 시간을 되짚어 보니, 엄마는 그 시절 막냇동생을 낳고 사 남매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아득해진다. 난 여전히 철부지 같은데, 엄마는 내 나이에 벌써 자식을 넷이나 낳았구나. 엄마는 서른다섯에 이미 대단한 어른이었구나.
김애란 작가는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 담은 이 글에서 ‘시간은 어떻게 생겼을까?’라고 묻는다. 그녀는 김연수 작가와 그의 딸 열무가 보낸 여름날의 기록에서 힌트를 얻는다. 김연수 작가는 열무를 자전거 앞 아이용 의자에 앉히고 페달을 밟는다. 아이는 연신 고개를 돌려 아빠의 얼굴을 바라본다. 풍경은 흘러가지만 서로 마주한 부녀의 시간은 기억과 문장 사이에 켜켜이 포개진다. 시간은 그렇게 자전거 앞자리에서 아빠를 돌아보고 웃는 열무의 얼굴과, 먼 훗날 그 여름날을 되짚어 볼 누군가의 얼굴 모두를 닮아 간다.
내 외증조할아버지는 잔칫집에 다녀올 때면 늘 주머니에 유과를 넣어 와 어린 엄마 입에 넣어 주셨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태어난 엄마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니, 먼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내리사랑에 내가 200년은 살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든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나이인데도 서른다섯 엄마의 시간이 내게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다만 그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나에게 이어져 있음을 알기에, 언젠가 따뜻한 얼굴로 엄마의 시간을 마주할 것이다. 그때면 나도 엄마가 맛본 유과 맛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