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이 바꾸는 서울의 상권지도[오늘과 내일/전승훈]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2일 23시 17분


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찹쌀떡 가게 앞에는 아침부터 외국인들이 긴 줄을 선다. 끈적끈적한 떡의 식감을 외국인들이 싫어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옆에 있는 감자탕 가게에도 줄이 길게 서 있다. 맙소사 외국인이 웬 감자탕? 돼지 뼈에 붙은 살을 맛있게 발라 먹는 그들은 누구인가. 평일 낮에도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거리를 메운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외래관광객 2000만 명 시대. 서울 도심의 상권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오는 동네냐, 아니냐. 한쪽은 핫플레이스가 되고, 다른 쪽은 공실 지옥이다. 내수 소비 회복이 언제 될지도 모르는 요즘. 외국인이 서울의 상권지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894만 명. 전년 대비 15.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올해 외래관광객 2300만 명, 2029년까지 3000만 명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21일 BTS 광화문 공연을 앞두고 서울은 ‘BTS노믹스’로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외국인의 관광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수동, 홍대, 을지로, 익선동, 한남동, 해방촌, 신당동, 동묘…. 외국인들은 ‘로컬처럼’ 서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강북의 재발견’이다. ‘오징어게임’, ‘K팝 데몬헌터스’ 등 전 세계를 강타한 K컬처의 힘이 크다. 한국에 가서 한국인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휩싸인 것이다.

강북의 재발견

우리 주변에 이렇게 힙하고, 재밌는 곳이 있다니! 국내 MZ세대도 외국인을 따라 서울 강북의 골목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명동에서 나온 외국인들은 ‘을·충·당 벨트’(을지로-충무로-신당동)로 흘러넘쳐 간다. 에어비앤비의 성지 홍대 상권은 연남동, 망원동으로 확장된다.

외국인이 방향을 틀면 상권의 흥망이 바뀐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경리단길이 쇠퇴하고, 리움미술관 등 고급 문화시설이 많은 한남동이 K패션의 성지로 떠올랐다. 강남 신사동에서는 공실률이 45.2%로 치솟은 가로수길을 떠난 외국인들이 인근 도산공원 앞으로 몰려갔다.

한국관광공사가 정의한 K관광 트렌드는 한국인의 일상을 즐기는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이다. 백화점 면세점 쇼핑보다는 시장, 올리브영, 약국, 다이소를 다니며 먹방을 즐기고, 체험형 소비에 집중한다. 성수동의 외국인 소비는 지난해 상반기 226.3% 폭증했다. 외국인과 국내 MZ세대가 몰려드는 상권을 글로벌 브랜드들이 놓칠 리 없다. 월 임대료 1억∼2억 원을 내면서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다.

반면 강남역과 테헤란로, 여의도와 같은 전통 비즈니스 상권은 울상이다. 강남대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1%로 치솟았고, 여의도는 밤만 되면 유령도시로 변한다. 재택근무가 늘고, 온라인 소비로 전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평일과 주말, 밤과 낮 구분 없이 ‘상시 유동인구’를 제공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없는 거리엔, 더 이상 내국인도 찾아오지 않는다.

외국인 친화적인 도심 상권 개발

종로3가역 익선동 갈매기살 골목은 새벽 3시까지 줄을 선다. ‘야장’에서 떠들썩하게 밤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들의 풍경은 뮌헨 옥토버페스트 현장을 방불케 한다. 원래 불법 단속 대상이었던 가게의 도로와 인도 점유를 종로구청이 특정 구역에서 허용하고, 주민과 경찰이 자발적으로 질서 유지에 나서 가능한 장면이다. QR코드를 이용한 다국어 메뉴 설명 등 외국인 친화적인 도심 상권 개발 전략도 주효했다.

서울의 상권 지도는 더 이상 지하철 노선도나 오피스 밀집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전 세계 2030세대의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그려지고 있다. 2000만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서울의 어느 골목에 새로운 상권을 탄생시킬 것인가. 그 지도를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이 다음 10년의 서울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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