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 증권사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코스피 장세를 모니터하고 있다. 2026.3.10/뉴스1
최근 국내 증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시장이 아니라 코인판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루 사이 5~10%대 급등락이 반복되고 장중 변동 폭도 크게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주식시장보다 가상자산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다.
10일 오전 장 초반 코스피는 전날 급락 이후 강하게 반등하며 선물 시장에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이 급변할 경우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장치다. 전날 중동발(發) 유가 급등과 외국인 매도세가 겹치며 크게 하락했던 시장이 하루 만에 반등하면서 투자 심리도 크게 출렁이고 있다. 간밤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안정된 가운데 금융시장 안정 조치에 대한 기대도 투자 심리 완화 요인으로 거론된다.
최근 일주일간 한국 증시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장세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첫 거래일인 지난 3일 코스피는 약 7% 급락했다. 다음 날인 4일에는 장중 낙폭이 12%에 가까워지며 역대급 변동성을 보였다. 이후 5일에는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9% 넘게 급등했고, 6일에는 중동 전쟁 확대 우려 속에 장중 등락을 반복하다 강보합으로 마감했다. 급락과 급등이 반복되면서 지난주 코스피 주간 하락률은 약 10%를 넘겼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투자 심리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증시의 구조적 특성과 대외 변수에 대한 높은 민감도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 외국인 수급이 흔드는 시장
글로벌 자금 흐름이 최근 변동성을 키운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해외 투자자들은 개별 기업 실적보다 유가나 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거시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신한투자증권 노동길 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번 변동성은 펀더멘털 문제가 아니라 유가 변동성이 만든 장세에 가깝다”며 “글로벌 자금이 비중을 줄일 때는 유동성이 높은 시장부터 매도가 나오는데 한국 증시가 그 대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규모가 커진 점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증시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글로벌 8~10위권을 오르내리는 대형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비중을 조정할 경우 매매 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지수 변동 폭도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개인 투자자 비중 높은 구조
한국 증시는 개인 투자자 참여 비중이 높은 시장이다. 개인 투자자는 기관이나 연기금보다 단기 매매 성향이 강하고 뉴스나 정책, 글로벌 변수에 빠르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산업이나 테마가 형성되면 관련 종목으로 자금이 빠르게 몰리고, 반대로 악재가 나오면 매도세도 동시에 집중되는 구조다.
외국인 매도에 개인 투자자의 레버리지 구조가 더해지면서 변동성이 확대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 연구위원은 “수급의 핵심은 개인 투자자지만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구간에서는 신용이나 레버리지 투자 물량이 청산되면서 개인 순매도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KB증권 태윤선 시황컨설팅 애널리스트는 “한국 증시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 투자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정책 변수나 글로벌 이슈에 따라 자금 이동 속도가 빠른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 유가·환율에 민감한 경제 구조
한국 경제가 유가와 환율 같은 글로벌 변수에 민감한 구조라는 점도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 연구위원은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라 유가 상승이 환율과 외국인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펀더멘털이 바뀌지 않아도 국제 수지 흐름을 타고 매도세가 나타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유가 상승이 환율 변동으로 이어지고, 환율 상승이 외국인 자금 이탈 압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반면 미국은 에너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변동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반도체가 좌우하는 코스피
코스피가 일부 대형주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 역시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태 애널리스트는 “코스피 변동성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결국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업황 사이클”이라며 “대형 반도체 기업 주가 흐름이 지수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방산과 조선 업종은 최근 수주 증가 기대가 이어지며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정책 기대가 투자 심리 완화
시장에서는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 대응도 투자 심리를 일부 완화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태 애널리스트는 “현재 시장의 불안 심리가 높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100조 원 규모의 금융 안정조치가 시장 안정 의지를 보여준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특성이 겹치면서 한국 증시는 글로벌 시장보다 변동성이 큰 ‘고베타(high beta) 시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고베타 시장은 상승장에서는 빠르게 오르지만 하락장에서는 낙폭도 크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 변동성 장세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
전문가들은 중동 리스크와 같은 글로벌 변수에 따라 당분간 증시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노 연구위원은 “한국 증시는 글로벌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종속 변수에 가까운 구조”라며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산유량 조정 같은 변수로 이어지면서 기업 실적(EPS) 전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사태가 조기에 진정될 경우 반도체 중심의 AI 투자 사이클이 이어지고 있어 국내 증시의 중장기 방향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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