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여자 배가 불렀네” 말에 위급상황 직감…쓰러진 모녀 구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5일 17시 51분


함평 처갓집 찾은 목포해경 이종선씨
복수 찬 40대女와 굶주린 9살 딸 구해

이종선 목포해양경찰서 예방지도계장(오른쪽)과 부인 윤옥희 씨(목포중앙초등학교 조리공무원)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위기에 놓인 모녀를 구했다. 목포해경 제공
이종선 목포해양경찰서 예방지도계장(오른쪽)과 부인 윤옥희 씨(목포중앙초등학교 조리공무원)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위기에 놓인 모녀를 구했다. 목포해경 제공


“엄마가 배가 불렸네. 임신을 했나봐.”

지난달 18일 전남 함평군 처갓집을 찾은 이종선 씨(60·목포해양경찰서 예방지도계장)는 이웃 주민이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를 예사로 듣지 않았다. 이 씨는 부인 윤옥희 씨(59)와 함께 돌아가신 장인·장모의 빈집을 관리하기 위해 처갓집을 자주 방문해 왔다. 마침 설 명절을 맞아 이웃집 A 씨(45) 모녀에게 떡을 전해주러 갔던 주민이 이 씨에게 이 같은 말을 건넨 것이다.

젊은 시절 병원에서 7년 동안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이 씨의 머릿속에는 순간 ‘직감’이 스쳤다. 40대 여성이 비정상적으로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은 임신이 아니라 심각한 질병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씨 부부가 곧장 찾아간 A 씨의 집 안은 차디찬 냉골이었다. 한겨울 추위에도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고, 부엌에는 끼니를 해결한 흔적조차 없었다. A 씨는 배에 물이 가득 차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신음하고 있었고, 9살 딸은 며칠째 굶주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상황이 위급하다고 판단한 이 씨는 즉시 A 씨를 무안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진료 결과 A 씨는 폐와 위, 장 등 주요 장기가 크게 훼손되어 배에 물이 차는 위독한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할 뻔한 순간이었다.

이 씨는 위급한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긴급 진료비와 집 난방용 기름값을 사비로 선뜻 내놨다. 또한 끼니를 거른 딸에게 떡국과 간식을 사주며 안심시켰다. 이어 모녀의 친인척들에게 연락해 A 씨가 수도권 대형 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돕고, 홀로 남겨진 딸의 거처도 마련해 줬다.

조사 결과 A 씨 모녀는 7, 8년 전부터 함평의 빈집에 정착해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다 지난해부터 건강 악화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평군 관계자는 “지난해 기초수급자 신청을 권유했으나 접수되지 않았고, 설 연휴 직전 방문 때도 만나지 못해 걱정하던 차였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면사무소에 연락해 모녀가 긴급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적 절차도 직접 챙겼다. 최근에는 장애를 앓고 있는 A 씨의 아버지로부터 “딸을 살려줘서 고맙다. 꼭 회복시키겠다”는 감사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29년의 해경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퇴직을 앞둔 이 씨는 5일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이 소중한 생명을 구해 다행”이라며 “A 씨가 빨리 건강을 회복해 딸과 다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임신 오인#건강 위기#빈집 관리#생계 지원#복지 사각지대#긴급 진료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