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인연 벗어던지자”… 확 달라진 원조 친윤
궁지 몰린 ‘계엄 옹호’ 장동혁, 기로에 섰다
대선 도전 vs 보수 위한 ‘밀알 정치’ 어느 쪽인가
이기는 DNA 찾으려면 1%씩 지지율 올려야
김승련 논설실장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이젠 윤석열 인연을 벗어던지자”고 말한 것은 계엄 후 1년만이다. 내년 지방선거 참패 걱정에서 한 말이겠지만, 당의 공기가 확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몇 가지가 눈길을 끈다. 먼저 장동혁 당 대표의 ‘계엄은 민주당 탓’ 주장을 공개 비판하는 형식이었는데, 웰빙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 당 문화에선 드문 일이다. 게다가 윤 의원은 원조 윤핵관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기어이 부글거리는 저류가 분출한 이상, 8일 열릴 의원총회는 달라야 한다. 엎드려 침묵하던 영남·강원권의 이른바 ‘언더 찐윤’ 30여 명 가운데 한두 의원이 공개 동조한다면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전체 107명 의원들은 ‘제대로 사과하자’는 쪽과 ‘그러면 더 끌려다닌다’는 쪽이 반반쯤이라고 한다.
열쇠는 장동혁 대표가 쥐고 있다. 장 대표는 정치 입문 후 5년 동안 정치가 술술 풀렸다. 최근 3년 동안 의원직에 2번 당선되는 동안 사무총장을 거쳐 당 대표가 됐다. 지지층이 된 강성 아스팔트 우파 그룹을 계속 활용하고, 한동훈 이준석 등 미래의 범보수 경쟁자를 향한 거부감만 유지시키면 2030년 대선 후보 자리가 어른거릴 것이다. 장 대표는 벌써부터 ‘4번 타자’ 즉,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렇던가. 자신이 성공했던 바로 그 이유로 실패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 장 대표가 그런 위기에 몰렸다. 친윤 우파의 지지로 일어섰지만, 이젠 그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친한계였던 그는 계엄의 밤에 계엄 해제 표결 때 찬성한 18명 국힘 의원 중 하나였다. 하지만 탄핵 반대로 돌아선 뒤론 “계엄은 하나님의 계획”이란 말까지 남겨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강성 우파가 미는 50대 주자가 되면서 당 대표까지 맡았는데, 그러다 “우리가 황교안” 발언이 나왔다.
이런 퇴행 속에 지금 보수 야당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대장동 항소 포기, 위헌 논란이 큰 ‘사법개혁 법안’ 파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판이 먹히지 않는다. 장 대표가 마이크를 잡지만 ‘계엄 옹호’ 이미지가 겹쳐지니 힘이 빠진다. 위헌적 불법적 계엄을 일으켜 파면된 전직 대통령과 절연하는 일도 못 하는데 누가 귀 기울이겠나.
그렇다고 장 대표가 돌아서서 사과의 길로 들어서는 걸 예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내부적으론 “1월부터 달라질 거다”라고 말한다지만, 그는 이미 양치기 소년이다. 여름부터 “하루에 1도씩 달라지겠다”고 약속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설령 장 대표가 결심하더라도 험난한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자기를 부정하고, 한동훈 전 대표를 견제할 때 쓰이던 ‘배신자’ 딱지를 각오해야 한다. 장 대표는 강성우파의 지지를 쟁취한 게 아니라, 주인 잃은 우파의 마차에 올라탄 것에 가깝다. 장 대표가 변심하면 마차는 언제든지 떠나고 빈손으로 남게 될 리스크도 있다.
이럴수록 해법은 근본적인 질문에서 나오곤 한다. 하고 싶은 정치가 뭐냐는 물음이다. 대표직 유지하고 ‘4번 타자’로 뛰다가 몇 년 뒤 대선후보가 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위기에 몰린 보수정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정치를 꿈꾸나. 의정 활동 기간이 3.5년인 그로선 현직 당 대표지만 그만큼 유연할 수 있다. 다만, 그가 소수의 강경론자 정치인, 유튜버와 깊이 교유한다는 당내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굴 속에 몇몇이 모여 자기들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체적 진실인 양 판단하는 오류에 빠져선 곤란하다는 옛 가르침을 새겨야 한다.
국민의힘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처절한 반성과 단절을 통해 제1 야당답게 건강한 반대자가 될 책무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3차례 연이은 총선 패배가 말해주듯 수년째 그런 역량을 잃어가고 있다. 민주당의 독주를 탓할 수 있지만, 그건 일부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107석 의석에, 20%대 지지율로는 어림도 없다. 하루에 하나씩 국민 마음을 얻는 좋은 정치를 이행하고, 지지율을 1%포인트씩 높여야 한다. 이걸 버거워하다 일어난 게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이다. 이기는 DNA를 되찾기 위해선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정치를 왜 하는지, 10년 뒤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초라해진 보수 본류 정당의 대표로서 유권자들에게 미안하지 않은지…. 장 대표가 말하는 기도의 시간에 떠올려야 할 질문들이다. ‘잘 싸우는 정치’를 강조하는 장 대표는 1차 싸움 대상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나중의 문제다. 우선 지난 1년간의 자신과 싸우고, 이겨내고, 바꿔내는 게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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