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현수]두 개의 경제가 따로 도는 나라

  • 동아일보

김현수 경제부장
김현수 경제부장
국제통화기금(IMF)은 해마다 네 차례 ‘세계경제전망(WEO)’을 발표한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바뀔 때마다 IMF에 그 배경을 물으면 늘 비슷한 단골 멘트가 돌아온다.

“반도체 경기가 풀리면 하반기 회복 여력이 있고….”

전망치가 오르든 내리든 한국 경제를 설명할 때 반도체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도체 보릿고개가 오자 지난해 세수는 펑크가 났다. 지난달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6%에 달했다. 최근 반도체 호황, 즉 ‘슈퍼사이클’이 찾아오니 증시도 수출도 경기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팀 빅테크’ vs 내수 산업


직전 슈퍼사이클이었던 2017, 2018년 한국은 각각 3.4%, 3.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10년 만에 다시 온 반도체 호황은 0%대 성장 우려에서 벗어날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두 번의 슈퍼사이클이 도는 동안 내수는 얼어붙어 왔다. 일시적 경기부양 효과가 나오더라도 수출의 온기가 내수로 번지지 못한 탓이다.

그 결과 한국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경제가 굴러가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공급망 속에서 빅테크와 한 팀이 된 수출 경제, ‘팀 빅테크’. 그리고 내수 중소 제조업·자영업의 경제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한쪽은 호황인데 다른 쪽은 침체다. 성과급이 쏟아질 때 다른 쪽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임금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고용 불안까지 겹친다. 코스피가 4,000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오른 종목보다 내린 종목이 훨씬 많다.

반도체 취업유발계수는 전체 제조업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다른 산업보다 고용이 덜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발 관세 타격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팀 빅테크’는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팀 빅테크’에 편입되고자 하지만 취업 문은 좁아지는 셈이다.

실제로 제조업 취업자 수는 16개월째 줄어들었다. 반면 구직조차 포기한 2030은 매달 늘고 있다. 지난달 20대뿐 아니라 한창 일할 30대마저 ‘쉬었음’ 인구가 33만 명으로 급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노에서 나오는 극단의 정치

10년간 자산 인플레이션도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최근 글로벌 금리 인하가 시작되자 다시 자산 인플레 조짐도 보인다. 팀 빅테크 취업도, 자산 인플레도 잡지 못하는 2030세대의 좌절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세대 갈등으로도 번진다.

한 나라에 두 경제가 따로 돌면 소외된 이들의 절망이 커지고, 분노를 연료로 삼는 극단 정치가 등장한다. 미국도 그렇다. 월가와 실리콘밸리가 이끄는 미국 경제에서 소외된 분노가 극단적 정치 지형을 만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등장엔 쇠락한 제조업 지역의 분노가,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의 등장엔 ‘미친 월세’에 대한 2030의 분노가 있었다.

‘페이팔 마피아’의 좌장이자 팔란티어의 창업자이며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출연에 깊숙이 개입해 온 피터 틸은 오래전부터 젊은 세대의 분노를 지나치지 말라고 조언해 왔다. 최근 맘다니 시장의 당선에 그의 발언들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틸은 최근 미 언론 인터뷰에서도 맘다니의 문제의식만은 동의한다고 밝혔다. 해법에 대한 생각은 보수인 그와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틸은 ‘빚(학자금 대출)’과 ‘부동산’이 젊은 세대를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로 만들고 있고, 기존 정치인들은 이를 외면했다고도 했다. 이어 “미국 문화전쟁의 80%쯤은 결국 경제 문제로, 경제 문제의 80%는 부동산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안정된 일자리, 주거지 확대가 결국 많은 문제의 답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분노를 먹고 크는 정치가 아닌, 따로 도는 두 개의 경제를 이어주는 정책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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