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핵심증거 229개 다 따져 “이재용 무죄”에도… 檢, 상고 강행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8일 01시 40분


A4용지 906쪽 판결문 분석해보니… 증거능력 없는 위법 자료까지 검증
“실체적 진실 발견위해 증명력 판단”… 재판부, 檢주장 폭넓게 수용해 판결
檢 “1, 2심간에 주요 쟁점 판단 달라”… 법조계 “모두 무죄에도 기계적 상고”

항소심 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여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57)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이 ‘핵심 증거’로 주장한 229개의 증거를 면밀히 살펴봤던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가 검찰 주장을 최대한 폭넓게 수용해 위법 수집 증거까지 촘촘히 살펴봤음에도 19개 모든 혐의에 대해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증거능력이 모두 인정됐더라도 무죄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검찰은 상고를 강행했다.

● 2심 “위법 수집 증거까지 살펴봐도 무죄”


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A4용지 906쪽 분량의 이 회장 판결문에는 검찰이 ‘핵심 증거’로 꼽은 증거 229개가 6쪽에 걸쳐 망라됐다. 18TB(테라바이트) 분량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백업 서버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의 외장하드 등에서 검찰은 2014년 11월 이 회장과 고한승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의 전화 통화 결과 자료와 바이오젠 최고경영자(CEO) 만찬 결과 보고서 등을 핵심 증거로 추려 제출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증거능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압수와 수색 과정에서 탐색·선별 등의 절차가 없었고, 피압수자의 실질적 참여권도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위법 수집 증거는 재판부가 유무죄 판단에 쓰지 않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사사법의 정의 실현의 관점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것”이라며 “증거능력 판단과 무관하게 검사가 들고 있는 ‘핵심 증거’들의 내용 및 그 증거들이 요증사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증명력을 갖는지 등을 살폈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도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면 증거능력을 인정할 각오로 검찰 주장을 폭넓게 수용해 판결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렇게까지 살폈는데도 결론은 1심과 같은 전부 무죄였다. 재판부는 “합병 이사회 이후 합병 주주총회에 이르기까지 피고인들이 합병 성사를 위해 수립한 계획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의 통상적이고 적법한 대응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설사 증거가 모두 인정됐더라도 재판부가 같은 결론을 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 檢, “이전 판결과 배치” 상고 강행

하지만 7일 서울중앙지검은 이 회장 등 1, 2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 14명에 대해 모두 상고했다. 검찰은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 부정과 부정거래 행위에 대한 법리 판단 등에 대해 견해차가 있고, 1심과 2심 간에도 주요 쟁점에 대해 판단을 달리했다”며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 및 ‘분식회계’를 인정한 이전의 판결과도 배치될 뿐만 아니라 관련 소송들이 다수 진행 중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오전 법학 전문가 등 6명의 위원이 참석해 열린 형사상고심의위원회에서 상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 판결 등을 제시하며 대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상고심의위도 ‘상고 제기’ 의견을 의결했다. 1, 2심에서 공소 사실 전부 무죄가 난 사건을 상고하려면 상고심의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1, 2심에서 전부 무죄가 난 사건을 또 기계적으로 상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타다’ 사건으로 기소한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1, 2심에서 전부 무죄가 나오자 상고심의위 의결에 따라 2022년 10월 상고했지만, 이 전 대표는 2023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회장에 대한 기소는 2019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으로 부임한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 주도했다. 2018년 말 수사 착수 때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수사 라인에 있었다. 이날 삼성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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