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종엽]중2 모집책까지 고용한 도박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3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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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불법 도박 범죄자들은 회원 모집책을 ‘총판’이라고 부른다. 최근 중학교 2학년 학생들마저 총판으로 고용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5000억 원대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중고교생 12명을 모집책으로 썼다. 도박에 중독된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친구를 도박에 끌어들이거나 텔레그램 채팅방 등에서 도박사이트를 홍보하도록 했다. 말이 좋아 총판이지 경찰에 붙잡힐 위험을 해외에 있는 총책 대신 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쓴 것이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 잡고, 자, 돈 놓고 돈 먹기.’ 교묘한 눈속임으로 행인들의 쌈짓돈을 뜯어내던 과거 야바위꾼도 아이들은 상대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틈을 비집고 아이가 머리를 들이밀면 야바위꾼은 사설(辭說)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를 끼워 넣었다. 요즘엔 ‘무슨 짓을 저지르든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하다 보니 범죄자들이 아이들을 동원해 아이들에게 도박을 권한다. ‘도박으로 한 번에 큰돈을 벌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라고 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범죄자들 탓에 도박이 교실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청소년 사범, 중독 환자, 상담 수가 모두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들은 친구 얘기를 듣고 마음이 동하거나, 공짜 웹툰과 드라마를 보려고 접속한 불법 공유 사이트에서 호기심에 배너 광고를 눌렀다가 도박을 시작하게 된다. 도박에 중독된 아이가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거나 절도, 온라인 사기 등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청소년이 청소년에게 도박비를 고리로 빌려주는 ‘작업 대출’ 생태계까지 있다고 한다.

▷10대 자녀를 뒀다면 아이가 평범한 게임을 하는 건지 도박에 빠진 건지 눈여겨 살펴야 한다. 아이들이 하는 온라인 도박은 카지노처럼 딱 봐도 도박처럼 생긴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다리 타기나 게임형 도박은 얼핏 봐선 일반 게임 앱과 구별하기 쉽지 않다. 불법 스포츠토토 도박사이트 역시 ‘요즘 아이가 스포츠 경기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오해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불법 도박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청소년의 뇌는 어른보다 중독에 더 취약하다. 신경세포가 쉽게 흥분할 뿐 아니라 보상 및 여러 중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파민이 어른보다 많이 분비된다. 즉석에서 보상이 생기는 도박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다. 초중고교의 도박중독 예방 교육은 2022년부터 음주 흡연 마약 등 다른 예방 교육과 함께 의무화됐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흡연 등의 예방 교육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교육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성장기에 도박에 중독되면 나중에 헤어나오기도 힘들다. 학교와 학부모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불법 도박#중독#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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