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의사 카르텔’과 ‘탕핑 전공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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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한 시민이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문을 잡고 주저앉아 있다. 정부는 이날 "(전공의들이) 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그러지 않을 경우 3월부터는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절차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뉴시스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한 시민이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문을 잡고 주저앉아 있다. 정부는 이날 "(전공의들이) 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그러지 않을 경우 3월부터는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절차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최근 만난 정부 고위관계자와 의료계 등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달 초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 방침의 배경에는 “의사들의 카르텔(담합)을 깨야 한다”는 대통령실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고 한다. 27년 동안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은 현 상황이 의사들의 카르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두 배로 늘려 매년 1000명을 뽑자 법률 전문가들이 사회 모든 분야에 자리를 잡아 법치주의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됐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도 증원을 원치 않은 법조인 카르텔을 깬 결과 국가적으로 선순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지난해 사교육 카르텔을 깨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의 조치를 취했고 노조 등 이권 카르텔과도 전면전을 벌였다.

다만 의료계는 다른 직군과 다소 다른 생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펌과 대형 학원들은 민간기업으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국내 모든 병의원은 국가가 지정한 당연지정제에 묶여 있다. 당연지정제란 건강보험에 가입한 모든 국민이 어떤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 의사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지은 민간병원이라도 건강보험에서 정해 놓은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이상은 받을 수 없다. 결국 상당수의 의사들은 낮은 수가 속에서 많은 환자를 봐야 병의원을 유지할 수 있다. 쉬지 않고 힘들고 고되게 일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이 극찬한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의 현실이다.

물론 당연지정제가 아니라면 국민들은 ‘의사 카르텔’ 때문에 필수의료에도 현재의 10배가 넘는 비싼 진료비를 지출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만약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면 더 이상 카르텔 우려가 없으니 의사들의 자유를 묶었던 당연지정제도 폐지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

이제 곧 3월이다. 새로운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들이 들어와 병원에서 중요한 일들을 배우며 부족한 의료 인력을 메워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병원 전공의 상당수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고 그 자리를 메울 의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말 그대로 ‘의료대란’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 정부의 면허정지 및 사법절차 경고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의 여유가 느껴질 정도다. 마치 정부에 저항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연상케 한다. 보건당국도 전공의와 소통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실정이다.

의료대란은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중장기적으로 정부에도 도움이 안 된다. 보건당국이 소통을 원한다면 제도상으로는 의사단체 중 유일한 법정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의결기구인 대의원회가 파트너다. 그런데 최근 대의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에 전권을 주기로 의결했으니 비대위가 의료계 대표 기구가 됐다.

대통령실은 28일 “의협은 대표성을 갖기 좀 어렵다”고 했지만 비대위를 완전히 제외하고 대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전공의들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며 “조만간 전공의, 교수, 개원의 등이 모여 단체 행동의 시작과 종료를 투표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파국을 막기 위해 정부와 의협 비대위, 그리고 의사단체가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의사 카르텔#탕핑 전공의#의료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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