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후지쓰카를 통해 이어지는 한일친선교류[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8일 2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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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경기 과천시 추사박물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후지츠카와 난학(蘭學)’이라는 제목으로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전시 첫째 날인 이달 3일, 나는 그곳으로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나는 한국 문화와 예술에 흥미를 가져 25세 때 한국에 와서 공부해 왔지만 계속 다가가지 못한 분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다. 글씨는 조금의 빈틈도 없어 보이고, 학문은 난해해서 감히 가까이 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0년 11월부터 열렸던 추사의 ‘세한도’ 특별전이었다. 그 전시에서는 추사의 연구자이며 추사를 사숙하는 학자로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가 소개되어 있었다. 경성제국대 교수였던 그는 1936년에 추사 김정희 연구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1932년경부터 1944년경까지 ‘세한도’를 소장하기도 했다.

추사와 일본인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조사해 보면서 놀라웠다. 이런 중요한 인물을 놓치고 있었다니…. 그러나 후지쓰카를 몰랐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신기자들을 앞에 두고 후지쓰카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는데,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물렀던 기자들조차 이구동성으로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말했다. 나는 후지쓰카를 만남과 동시에 비로소 환갑이 되고서야 추사 선생에게 다가가게 된 것이다.

후지쓰카는 1940년에 경성제국대를 정년퇴임하면서 ‘세한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귀국했으나 한국에 돌려주었으며, 사후에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明直·1912∼2006)는 2006년 추사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부친이 수집한 추사 친필 26점, 추사와 관련된 서화류 70여 점 등 1만여 점의 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했다. 아키나오의 기증은 2013년에 추사박물관이 개관하는 데 큰 힘이 됐고, 그 후 10년간 박물관을 통해 착실하게 학문적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이번 ‘후지츠카와 난학(蘭學)’에서는 후지쓰카 기증 유물 중 일본 에도(江戸)시대(1603∼1868년)의 난학과 후지쓰카 가문 자료를 통해서 후지쓰카의 생애와 학문을 살필 수 있다. ‘난학’이란 에도시대에 주로 네덜란드(和蘭)에서 나가사키(長崎)를 통해 일본으로 전래된 서양의 의학과 과학 지식을 연구한 학문으로, 후지쓰카 가문은 난학을 통해 신학, 의학, 금석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대학 시절 리포트로 제출한 ‘중용(中庸) 연구’였고, 학사 학위 논문 또한 중용 연구였다는 점이다. 당시 앞서간 고증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긴 했으나,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후지쓰카 가문에 소장된 난학 관련 자료,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중용, 평생 연구 주제로 삼은 논어, 그리고 청나라나 일본 유학자들에게도 인정받고 동아시아 학문적 교류의 파도를 일으킨 추사의 연구. 이번 전시를 통해 후지쓰카의 깊은 사상과 인간상을 엿볼 수 있었고, 그래서 후지쓰카가 추사에 공감했음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도 조금씩 추사 선생에게 다가가는 것 같아 기뻤다.

또한 6일에는 온라인으로 추사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연결해서 일본의 센다이(仙臺)총영사관과 도호쿠가쿠인(東北学院)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추사와 후지쓰카를 매개로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우호친선교류에 대한 세미나에 참여했다. 추사박물관과 추사 연구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한편 2021년 2월, 우리 집에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입양됐다. 그중 한 마리를 추사의 대표적인 난초 그림 ‘불이선란도(不二禅蘭圖)’에서 이름을 따와 ‘불이(不二)’라고 지어줬다. 그는 내가 다가가면 피하곤 하지만, 어떨 때면 무심코 곁에 다가와 몸을 비비고는 스르륵 사라진다. 이른바 ‘츤데레 고양이’인데 난해한 매력을 지닌 우리 집의 아주 ‘작은 추사’다.

추사박물관은 경기 과천시 주암동, 추사 선생이 말년 4년간을 지낸 곳에 있다. 2007년에는 선생이 살았던 ‘과지초당(瓜地草堂)’도 복원해 건축되었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박물관 옆에 세워진 아늑한 한옥 집으로 두 곳이 조화를 잘 이루어 평온함을 준다. 속된 세상에 사는 나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추사의 학문을 기리며 후지쓰카 부자의 뜻도 떠올리면서 올여름 나들이를 과천에서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감히 추천해 드리고자 한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경기 과천시#추사박물관#한일친선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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