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 부모 90% 이과 희망… 문과 위기 어떻게 극복할까[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2일 21시 30분


코멘트
종로학원이 최근 온라인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139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열 중에 아홉이 자녀의 이과 진학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계열 선호도가 공학계열과 순수 자연과학계열 선호도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아무튼 문과 선호도가 10% 안팎으로 낮아진 것은 틀림없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의 개시와도 관련이 큰 듯하다.

▷문과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문사철(文史哲)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文)은 글을 읽고 쓰는 걸 말한다. 대학의 외국어학과들이 문학이 아니라 외국어를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AI가 높은 수준의 번역을 해낸다면 문학과는 글을 읽고 쓰는 문 자체를 가르치는 데 주력할 수 있다. 사회과학도 텍스트를 읽는 데 급급하지 말고 적극적인 글쓰기에 나서야 한다. AI가 회사 말단사원의 허드레 사무일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말단사원 때부터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고 창의성은 글을 쓰는 훈련에서 비롯된다.

▷AI 시대에 인식론과 윤리학, 즉 철학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해졌다. AI는 종종 아무 대답이나 그럴싸하게 지어낸다. 물론 그럴싸하게 지어내는 것은 인간도 한다. 그러나 AI는 인간과 달리 그럴싸하게 지어낸다는 의식 없이 태연하게 그렇게 한다. 궁극적으로 AI는 윤리 의식이 없다. 윤리 의식을 갖고 기계를 통제하는 건 인간이다. 마블 영화에서 아이언맨의 적수인 무기 생산 업체 최고경영자(CEO) 저스틴 해머처럼 파괴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인문학도에게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도에게도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건 AI 시대 전에도 그렇고 후에도 그렇다. 게다가 역사 공부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가 말했듯이 어떤 목적을 떠나 그 자체로 흥미로운 시간 여행이다. AI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준다면 남는 시간은 공간적인 여행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여행에도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법학과 경영학은 본래 문사철에 속하지 않는, 직업을 갖기 위한 학문이다. 법학을 대학원 과정으로 올려보냈듯이 경영학도 대학원 과정으로 올려보낼 필요가 있다. 법대가 전문대학원이 된 뒤 우수한 문과생들을 흡수하는 곳이 경영대다. 경영대까지 전문대학원이 된다면 우수한 문과생들이 문사철로 대학 과정을 이수한 후 법학전문대학원이나 경영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게 함으로써 인문학적 식견을 갖춘 법률가나 경영가를 키우면서 문사철을 살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횡설수설#이과#문과#진학#ai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