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동물도 ‘질풍노도의 시기’ 건너야 어른이 된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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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젤, 9개월부터 치타 냄새 배우고… 혹등고래, 암컷 유혹하는 노래 학습
하이에나, 무리 속 서열 정리법 터득… 홀로서기 위한 청소년기 사람과 흡사
◇와일드후드/바버라 내터슨 호러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김은지 옮김/448쪽·2만2000원·쌤앤파커스

혹등고래는 4년, 가젤은 9개월, 치타는 1년 6개월부터 각각 ‘와일드후드’에 접어든다(왼쪽 사진부터). 저자들은 “존재를 
위협하는 일을 마주하는 건 종(種)을 막론하고 청소년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혹등고래는 4년, 가젤은 9개월, 치타는 1년 6개월부터 각각 ‘와일드후드’에 접어든다(왼쪽 사진부터). 저자들은 “존재를 위협하는 일을 마주하는 건 종(種)을 막론하고 청소년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서부에 주로 서식하는 ‘캘리포니아 해달’은 종종 일탈을 즐긴다. 무시무시한 백상아리 수백 마리가 가득한 바다에 놀러 가는 것이다. 이 바다엔 먹이가 많지 않다. 백상아리에게 목숨을 잃을 확률도 높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위험천만한 놀이를 즐기는 해달은 모두 태어난 지 8개월∼4년 6개월 된 개체였다.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했다. 언뜻 보기엔 쓸모없는 짓 같지만 살아남은 ‘청소년’ 해달은 독립성이 뛰어난 어른 해달로 자라났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홀로서기도 무사히 성공했다.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부 교수인 바버라 내터슨 호러위츠와 미국 과학 전문기자인 캐스린 바워스는 모든 동물이 청소년기인 이른바 ‘와일드후드’를 겪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동안 동물의 유년기와 성년기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청소년기는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동물의 청소년기와 인간의 청소년기를 비슷한 선상에 두고 비교한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동물이 청소년기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안전이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험준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가젤은 생후 9개월부터 치타가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배운다.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어엿한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를 알지 못하면 야생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무리 지어 행동하는 동물이라면 지위를 얻는 방법도 습득해야 한다. 대표적인 동물이 하이에나다. 하이에나 집단은 철저히 모계사회다. 태어날 때부터 서열이 높은 암컷이 어미의 지위를 물려받는다. 사람으로 치면 출생과 함께 ‘흙수저’와 ‘금수저’가 나뉘는 셈이다. 하지만 지위는 영원하지 않다. 다른 무리와 싸울 때, 사냥할 때 앞장선다면 지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위가 높아지면 좋은 음식을 먹고, 짝짓기를 할 때 우선권을 가진다.

생존 수업엔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태어난 지 4년이 지난 수컷 혹등고래는 이른바 ‘수컷 합창단’에 들어간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노래를 선배 수컷에게 배우기 위해서다. 혹등고래가 훌륭한 가수가 되려면 몇 년이 걸린다. 합창단에선 어른 혹등고래가 종종 텃세도 부린다. 하지만 연애의 기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청소년 혹등고래는 이를 참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동물은 자립한다. 수명이 가지각색인 만큼 독립 시기도 모두 다르다. 평균수명이 50일밖에 안 되는 초파리는 태어난 지 14일 만에 청소년기를 벗어난다. 400년을 사는 그린란드 상어는 180세에 독립한다.

물론 모든 동물이 성공적으로 자립하는 건 아니다. 양육자의 보호에서 벗어나려다가 다치거나 동료끼리 싸우다 죽는 동물이 적지 않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지만 부모 곁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동물은 청소년기에 홀로 서는 연습을 해야 제대로 된 어른이 된다. 인간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청소년기#무리 속 서열 정리법#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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