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봤으니 이젠 늙고 싶다”[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0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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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은 여배우에겐 ‘동안’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문근영(36)은 ‘절대 동안’, 송혜교(42)는 ‘동안의 정석’, 고현정(52)은 ‘명품 동안’, 장미희(66)는 ‘미친 동안’이다. 의사들은 ‘여배우 주사’라며 샤넬주사와 한방 동안침을 홍보한다. 노화를 예방한다는 ‘안티에이징’에 이어 아예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주장하는 ‘디에이징’ 제품까지 나왔다. 모두가 기를 쓰고 젊어지려는 ‘동안 강박’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선언이 신선하다.

▷영화 ‘타이타닉’(1998년)의 케이트 윈즐릿(48)은 사진 보정을 하지 않는다. 잔주름을 싹 지운 홍보 포스터는 “내 눈가의 주름을 전부 돌려 달라”며 반려하고, 늘어진 뱃살을 후보정으로 잘라내겠다는 제안에 “절대 자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변하고 달라지는 얼굴이 아름답다”며 “젊은 세대는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왜 포기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에마 톰슨(64), 레이철 바이스(53)와 ‘영국 성형 반대모임’을 꾸려 활동 중이다.

▷미국에선 메릴 스트립(74)이 얼굴에 칼 대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나이 먹는 건 억울하지만 성형으로 얼굴을 굳히는 건 우스운 일”이라며 “성형은 사람 간 소통을 가로막는 방해꾼”이라고 했다. 제인 폰다(86)는 “나이가 들어도 삶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 찬 왕국”이라며 시술을 거부하고, 드루 배리모어(47)는 두 딸이 외모 강박을 갖게 될까 봐 성형하지 않는다. 아역 배우 출신 저스틴 베이트먼(57)은 “폭삭 늙었다”는 악플에 “모든 나이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내가 멋지다”고 반박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년)에서 숱 많은 갈색 곱슬머리가 아름다웠던 앤디 맥다월(65)은 요즘 반백의 머리로 다닌다. 예순이 넘어서도 “세월이 비켜간 미모”라며 찬사를 늘어놓던 사람들이 이제는 “왜 염색 안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젊어 보이려면 많은 노력이 든다. 이제 그러기엔 지쳤다”고 했다. “늙어가는 일에 왜 그렇게 수치심을 느껴야 하나. 우린 끝을 향해 가는데 수치심을 느끼느라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대세는 안티에이징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젊어지기 위해 아기 오줌 받아 목욕했듯, 샌드라 불럭과 케이트 블란쳇은 신생아의 포경 수술에서 나온 음경 꺼풀 추출물로 피부 재생 시술을 받는다. 전 세계 안티에이징 시장이 매년 5%씩 성장해 2027년엔 75조 원이 될 전망이다. 코코 샤넬은 “어려 보이려고 기를 쓸수록 나이 들어 보인다”며 “스타일은 애티튜드”라고 했다. 많이 웃고 살았다는 증표인 주름을 싹 지운 ‘충격 동안’보다 “젊어 봤으니 이젠 늙고 싶다”는 당당함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여배우#동안#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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