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시키고 하루종일 자리 차지…무인점포 울리는 ‘얌체족’[사건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3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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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동작구의 한 무인 카페에 운영자가 붙여놓은 사용 안내문.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14일 서울 동작구의 한 무인 카페에 운영자가 붙여놓은 사용 안내문.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하루에 커피 값 1500원으로 12시간 넘게 무인 카페에서 지낼 수 있어 일반 카페보다 훨씬 경제적이죠.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눈치도 덜 보여 계속 앉아있을 수 있어 좋아요.”

취업 준비생 박모 씨(25)는 23일 “매일 오전 9시만 되면 무인 카페에 가서 공부하다 밤 12시에 귀가하는 게 일과”라며 “요즘 무인 카페엔 나 같은 사람이 대다수”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무인 카페뿐만 아니라 무인 빨래방이나 무인 사진관 등 무인 점포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얌체족’ 손님이 늘면서 운영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반 카페 등에서 이른바 ‘카공(카페 공부)족’ 경계령이 떨어지며 “3시간 이상 이용금지” 등 제재 조치에 나서자 장시간 카페를 이용하던 손님들이 무인 카페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17일 저녁 서울 중랑구의 한 무인 카페는 전체 20석 모두 공부하는 손님들도 꽉 차 있었다. 카페를 이용하려고 찾았던 다른 손님들이 자리를 찾지 못해 발길을 돌릴 정도였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50대 A 씨는 “스터디 카페도 아닌데 종일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충전하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보조 배터리를 충전해두고 다음 날 찾아가는 사람까지 있다”고 하소연했다.

14일 서울 동작구의 한 무인 카페 내에 공부를 하고 있는 손님들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14일 서울 동작구의 한 무인 카페 내에 공부를 하고 있는 손님들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이용료를 전혀 지불하지 않고 무인 점포의 편의시설만 이용하는 ‘얌체족’도 적지 않다. 경기도에서 무인 빨래방을 운영하는 문선기 씨(50)는 “손님 편의를 위해 무료 와이파이와 충전 시설 뿐만 아니라 냉난방 기기까지 마련해놨더니 빨래하러 오는 게 아니라 모여서 수다만 떨다가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하소연했다.

무인 사진관을 운영하는 김모 씨(40)도 “사진은 찍지 않고 매장 내에 마련해놓은 고데기로 머리만 세팅하고 나가버리는 사람, 매장 소품을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셀카만 찍고 나가는 사람 등 별별 손님이 다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인 점포 운영자들은 “전기세와 가스비 등 공공요금이 급등하면서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 얌체족으로 인한 부담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인 빨래방 사장 문 씨는 “자구책으로 500원을 내야지 에어컨과 히터를 1시간 동안 작동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했다”고 했다.

개인정보를 남겨야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출입문 통제기나 원격 방송 기능이 추가된 인터넷 카메라(IP 캠)도 인기를 끌고 있다.

무인 사진관 사장 김 씨는 “원격으로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매장 내에 송출되는 IP캠을 구매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매장 내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손님에게 경고성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인 빨래방 사장 문 씨는 “경고 방송 정도로는 별 소용이 없었다”며 “한 달 전부터 출입문 앞에서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출입문 통제기를 달았다. 전화번호 기록이 남기 때문에 아무래도 얌체짓을 덜하게 될 걸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인 점포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6일 광주에선 무인점포 12곳에서 현금을 훔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고, 7일에는 수원 일대를 돌며 수개월 동안 무인 점포 상품을 훔친 10대 2명이 체포됐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무인 점포에서 벌어진 절도 발생 건수는 2021년 월 평균 351건에서 2022년 471건으로 늘었다. 불과 1년 새 34% 증가한 것.

무인 점포 운영자들은 “절도 범죄 뿐만 아니라 상점 내에서 물건을 부수거나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등 다양한 유형의 범죄가 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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