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의회, 싸워도 ‘협치’는 한다… 원전 신설법 초당적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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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내각 불신임 투표 다음날
야당, 원전 건설 정부법안에 찬성표
보른 총리 “에너지 주권 보장” 환영
마크롱 “연금개혁 국민투표 안할 것”

21일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에 붉은 뿔을 그려 악마로 표현한 사진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정년 및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늦추는 마크롱 정권의 연금개혁이 20일 의회 절차를 매듭지은 뒤 전국 곳곳에서 반발 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 등을 통해 국민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파리=AP 뉴시스
21일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에 붉은 뿔을 그려 악마로 표현한 사진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정년 및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늦추는 마크롱 정권의 연금개혁이 20일 의회 절차를 매듭지은 뒤 전국 곳곳에서 반발 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 등을 통해 국민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파리=AP 뉴시스
‘의회 패싱’을 통해 연금개혁안을 밀어붙인 정부에 맞서 총리 불신임을 추진했던 프랑스 야당들이 하루 뒤 정부가 제출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법안’에는 상당수 찬성표를 던져 가결시켰다. 연금개혁에 대해서는 “국민적 저항”을 촉구하고,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며 여전히 반대하지만 국가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책에는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가치와 이념 차이로 부딪칠 때는 싸우면서도 민생 문제를 챙겨야 할 때는 실용정신을 발휘하는 정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 정부 법안에 던진 찬성표, 반대의 ‘3배’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원은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원전 건설 법안을 찬성 402표, 반대 130표로 통과시켰다. 찬성이 3배 이상 많았다. 전날 야당인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그룹과 좌파 연합 뉘프(NUPES)가 하원에 제출한 내각 불신임안이 겨우 9표 차로 부결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원은 총 577석 중 집권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중도 연합 ‘앙상블’이 245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구조다.

원전 건설 법안은 프랑스에 원전 6기를 새로 건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원전 건설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해 건설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상원에서 통과됐고 이날 하원 문턱을 넘었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표결 직후 트위터에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우리 에너지 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 건설 작업의 결과”라고 의회 결정을 환영했다.

하원 표결을 건너뛰는 승부수를 던지면서까지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값진 성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원전 정책은 마크롱 대통령이 몇 주 안에 국정운영 동력을 되찾으려는 개혁 이슈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원전 정책은 집권 르네상스는 물론이고 우파 공화당, 극우 국민연합(RN)도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도가 약 69%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5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맞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 에너지난이 심각해지면서 원전이 강력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원전 강국 프랑스에서마저 대규모 정전이 벌어지는 등 전력 생산량이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각종 규제 때문에 신규 원전 건설이 지연되자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 마크롱 “헌법 통한 연금개혁 옳아”
연금개혁안과 원전 건설 법안을 모두 처리한 마크롱 대통령은 22일 TV 생방송 인터뷰에서 연금개혁 정당성을 역설하며 반대 시위에 대한 대응 방안과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해 설명한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21일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서 지난해 자신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의원들과 만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주장하는) 의회 해산이나 개각, 연금개혁 관련 국민투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원들에게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벌이는) 군중은 선출된 대표를 통해 자신의 주권을 표출하는 국민들 앞에서는 정당성이 없다”며 연금개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고 일간 르몽드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새 개혁 의제 설정을 위한 아이디어를 2∼3주 안에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이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분노한 시위대를) 진정시키고 싶지만 급하게 일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에 극우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AFP통신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의) 뺨을 두 번째 때리기로 했다”고 비난했다. 수도 파리를 중심으로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프랑스#연금개혁안#마크롱 정부#원전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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