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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영국 최초의 여성 화가[이은화의 미술시간]〈258〉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3-03-16 03:00업데이트 2023-03-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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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화가가 드물던 17세기, 이탈리아에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있었다면, 영국에는 메리 빌이 있었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못했고, 화가 조합인 길드에 속하지도 못했지만, 빌은 영국 최초의 여성 화가가 되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빌은 1633년 3월 영국 서퍽의 한 사제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18세 때 직물 상인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찰스 빌과 결혼했다. 남편은 아내의 재능을 높이 샀다. 빌이 전문 화가로 활동하게 되자,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의 매니저가 되었다. 남편은 아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어떤 거래가 이루어졌는지, 누가 방문했고, 어떤 칭찬을 했는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곤 했다. 빌은 저술가이기도 했다. 1663년 유화로 살구를 그리는 것에 대한 지침인 ‘관찰기록’을 썼다.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유화 교육에 관해 영문으로 쓴 최초의 저술 중 하나다.

1666년 빌은 그림 그리는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사진)을 그렸다. 팔레트는 벽에 걸려 있고, 오른손은 두 아들의 미완성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를 잡고 있다. 이 그림은 남편의 초상화와 한 쌍으로 그려진 것으로, 두 초상화를 통해 가족 구성원의 완전체를 보여주려고 했던 듯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가족이나 지인의 초상화를 연습용이나 선물용으로 그렸다. 1670년대부터는 돈을 벌기 위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모델을 신중하게 골랐다. 화가로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존경받는 성직자나 귀족들을 그렸다. 이후 빌은 수입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할 정도로 충분한 돈을 벌었다.

여성은 정식 교육을 받는 것도 힘든 시대를 살았지만, 빌은 뛰어난 재능과 예술적인 환경 덕에 화가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오직 그림 판매로 가족을 부양할 만큼 성공했다. 21세기에도 쉽지 않은 뛰어난 성취를 이룬 예술가였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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