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백승훈]‘新중동 붐’ 신기루 안 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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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산유국, ‘탈석유’ 외치며 산업다각화 박차
단기투자 유치 아닌 공동 번영의 틀 마련 중요
세밀한 조정과 협력으로 장기적 파트너 돼야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위원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이후 ‘신(新)중동 붐’의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37조2000억 원의 투자 유치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원전과 방산, 에너지 등 첨단기술로 수출 활로를 모색해온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과 탈석유로 새로운 계기를 모색하는 UAE의 지향점은 맞아떨어진다”는 대통령실의 발표처럼 양국, 더 나아가 대한민국과 걸프 산유국 간의 공동 이익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1970년대 걸프 산유국은 대한민국에 기회의 땅이었다. 1973년 1차 석유파동과 고유가는 1970년대 대한민국 중동 건설 붐이라는 기회로 찾아왔다. 중동 건설시장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한국은 당시 세계 경제 침체 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1980년대와 1990년대 고도성장을 이룰 자본을 축적했다. 또 대규모 해외 국책 사업의 수주 역량을 갖춘 기업들을 양성해 현재 경제 10위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걸프 산유국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석유 산업 중심의 걸프 산유국은 산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탄소중립 선언과 RE100 등 세계적인 탈석유 흐름으로 인해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로는 국가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산유국들은 우선 자국민 대상 각종 보조금을 철폐하고 간접세를 증세하기 시작했다. 또 새롭게 부과된 세금에 대한 국민 불만을 최소화하고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국가 주도 대규모 경제개발 계획을 진행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 UAE의 ‘공업발전 전략 2030’ 등이 대표적이다.

걸프 산유국의 이런 산업 다각화 정책은 대한민국에 기회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1970년대와는 다르다. 복합경쟁 체제에서 중국은 물론 일본, 미국, 유럽연합(EU) 회원국과 걸프 산유국의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해야 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산유국들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우선 산업 다각화 정책을 단기적 이해타산의 관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 현재 정책은 대부분 장기 프로젝트로 해당국의 민간 기업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산업 다각화에 가장 적극적인 UAE는 ‘공업발전 전략 2030’의 일환으로 자국의 석유, 항공 및 관광 등의 서비스 부문같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산업 구조를 4차 산업 및 첨단 제조업으로 개선하고자 2021년부터 ‘오퍼레이션 3000억’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산업 분야 전반의 연구개발(R&D) 지출을 늘리는 것은 물론 향후 10년간 민간 기업 1만3500개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UAE 정부는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지분 100%의 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이들 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등 세부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한때 노동 생산성 저하로 해외 직접투자에 방해가 되었던 자국민 채용 정책도 산업 및 단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UAE 산업 다각화 정책의 목표가 단순한 투자 후 회수가 아니라 해당 산업 및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독일이 UAE와의 협업에 임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그린 에너지 개발과 관련해 독일은 UAE 정부는 물론 기업, 대학 간 협업을 통해 UAE 내 지속가능한 연구개발 생태계 구축에 신경을 쓰고 있다. 2022년 독일 전자전기 기업 지멘스가 UAE 청정에너지 회사인 마스다르, 아부다비 에너지부, 칼리파 대학, 에티하드 항공 등과 함께 항공 수소 연료 및 수소 엔진 개발을 위한 실증 공장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단기적 투자 유치가 아닌 공동의 번영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

현재 중동지역은 미중 전략 경합이 심화돼 여러 소다자 협의체 참여국의 복합 경쟁이 치열하다. 양국의 공동 인식만으론 신중동 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기대를 현실화하고 싶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하고, 중동 국가들과 세밀한 정책 조정으로 이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걸프 산유국은 현재 재정난으로 인해 대부분의 산업 다각화 프로젝트를 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하는 만큼 다자간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의 쾌거는 단순한 원전 제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공, 민간, 금융이 힘을 모아 중동과 장기적 협력 관계를 도모할 때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위원
#新중동 붐#uae#투자 유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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