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엔 윤핵관, 왼쪽엔 이재명…시선 둘 곳 없는 중도층[한상준의 정치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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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2%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37%, 더불어민주당이 31%다. 한 자릿수 이내의 격차로 비슷한 수준이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지지율 4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건 중도층이 셋 모두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 가운데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0%에 달했다. 정당 지지도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중도 성향의 응답자 중 25%는 국민의힘을, 30%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은 42%에 달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대선, 총선 등 전국 선거가 닥치면 각 정당이 가장 신경 쓰는 지점은 바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 30% 안팎으로 결집하는 상황에서 중도층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1년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중도층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현재 상황을 보면 당연한 일이다.

● “尹 대통령, 與 전당대회 개입” 70.4%
현재 진행 중인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특징을 정리하면 ‘쳐내기 전대’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중심이 돼 김기현 후보를 제외한 다른 당권 도전자들을 하나씩 쳐내고 있다. “친윤(친윤석열)만 남고 다 나가라”는 식이다.

전당대회는 각 후보들이 내세우는 당의 운영 계획과 가치를 당원들이 선택하는 자리다. 그러나 84만 명의 당원들이 선택에 나서기도 전, 친윤 진영은 무력 행동으로 당권 주자를 주저앉혔다.

친윤 핵심 인사들이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해 “반윤(반윤석열) 우두머리”라고 공격하자 친윤 성향의 초선 의원 50명은 연판장으로 거들었다. 결국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택하며 친윤의 뜻대로 되나 싶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김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전하자, 태도를 바꿔 갑자기 ‘나경원 구애’에 나선 것.

그런데 그 과정도 이상했다. 연판장에 이름을 올렸던 초선 의원 10명은 6일 나 전 의원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집단 압력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자리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일 터. 하지만 방문 목적에 대해 이용 의원은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해서 죄송하고 미안했다, 용서해 달라, 그런 차원이 아니다. (중략) 나 전 의원의 심경이 어떤지, 그런 차원으로 갔을 뿐”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권 주자인 천하람 후보는 “학교폭력 가해자 행태를 멈추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때리고, 고데기로 지진 것도 모자라 피해자가 살고 있는 여인숙까지 쳐들어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가해자들에 빗댄 표현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7일 서울 중구 한 식당 앞에서 당권 주자인 김기현 후보와 입장 발표를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 전 의원이 7일 서울 중구 한 식당 앞에서 당권 주자인 김기현 후보와 입장 발표를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더 이상한 장면은 대통령실의 참전이다. 대통령실의 ‘핵관(핵심 관계자) 중 핵관’인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나섰다. ‘나경원 사태’ 당시 대통령실의 2인자인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서면 입장문을 내고 친윤의 나 전 의원 압박에 가세했다. 이어진 ‘안철수 압박’ 국면에서는 대통령실의 최선임 수석인 이진복 정무수석비서관이 아예 작심하고 언론 앞에 섰다. 모두 이례적인 일이다.

이 수석은 5일 윤핵관을 비판한 안철수 후보를 향해 “대통령실 참모들을 간신배로 모는 것은 굉장히 부당한 이야기”라고 성토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이날 “국정운영의 적”이라는 말을 언론에 전했다. 사흘 뒤인 8일, 또 한 번 카메라 앞에 선 이 수석은 안 후보를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현직 공무원으로 당적(黨籍)이 없는 정무수석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공개 경고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 대통령실의 이런 행보에 한 여당 의원은 “청와대 시절 철저히 물밑에서 청와대가 특정 당권 주자를 미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서는 건 나도 처음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토마토가 6일부터 8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는 응답은 70.4%로 나왔다.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19.2%,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6.8%였다.
● “李 대표 체포동의안 통과시켜야” 55.9%
전례 없는 장면이 펼쳐지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4일 민주당은 서울 숭례문 앞에서 6년여 만에 장외집회를 열었다. 사실 야당의 장외투쟁은 낯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이던 2013년과 2015년 장외투쟁을 벌였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도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삭발과 단식까지 병행한 국회 밖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과거 야당들과 체급이 다르다. “장외투쟁은 소수당이 국회 내에서 문제 해결 방법이 전혀 없을 때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의 말처럼, 그간 장외투쟁은 의석수 부족으로 국회에서 여권의 독주를 막아낼 여력이 없을 때 야당이 쓰는 최후의 카드였다. 하지만 169석의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원내 제1당이다. 대선 패배로 행정부는 내줬지만, 입법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의 몫이다.

국민의힘보다 54석이 많은 민주당은 이번 장외투쟁의 명칭을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 국민보고대회’라고 정했다.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방탄 논란을 의식해 ‘검사독재’보다 ‘민생파탄’을 앞세운 것. 이를 두고 한 야당 의원은 “진짜 민생파탄이 문제라면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하면 될 일인데…”라고 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냈다. 헌정사 최초의 국무위원 탄핵이 보여준 것처럼 여당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결심만 하면 국회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위장 탈당, 무소속 의원 동원 등 다수당의 폭주를 막기 위한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각종 꼼수를 감행할 정도로 창의력과 실행력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와  당 지도부가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와 당 지도부가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도 민주당이 6년 만에 국회 밖으로 나간 진짜 이유는 결국 검찰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수사다. 문제는, 야권 내에서조차 “이 대표 개인의 문제에 과연 당이 총동원되는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현재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일할 때 벌어진 문제들이다. 당시 이 대표는 별다른 당직이 없었고, 자연히 민주당과 직결된 문제들도 아니다. “이 대표를 겨냥한 수사”라고 성토할 수는 있어도 “민주당을 겨냥한 수사”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검찰의 수사가 지난해 8월 이 대표가 제1야당의 수장이 된 뒤 시작된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수사는 시작됐다. 친명(친이재명)계에서도 “이 대표 개인의 문제와 당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에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민주당은 또 한 번 격랑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상정된다면 부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체포동의안 처리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요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부결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론조사 기관 넥스트리서치가 6, 7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에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55.9%, ‘통과시켜선 안 된다’는 응답은 34.6%였다.
● 42%의 중도 무당층은 어디로
이런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모습에 중도층은 두 당을 모두 외면하고 있다. 1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34%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이 응답은 지난주 42%까지 올라갔다. 또 자신을 중도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 중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2%에 그쳤다.

2016년 20대 총선 직전이던 2015년의 여야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누가 더 못하나’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진영 간 극심한 투쟁이 벌어졌다.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역시 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결국 분당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다만 후속 행보는 달랐다. 민주당은 당명을 바꾸고, 당시 문재인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해 총선 공천의 전권을 넘겼다. 김 위원장은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와 최고위원을 지낸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공천 배제)시키는 등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당시 당의 주류였던 친노,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총선에서 이기려면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명분 앞에 수긍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변화가 없었다. “진짜 친박을 구분한다”는 뜻의 ‘진박 감별사’라는 말이 등장했고, 계파 갈등은 총선 직전까지 이어졌다. 초유의 ‘옥새 파동’까지 벌어졌다.

선거 결과는 1석 차 민주당의 승리.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2020년 총선까지 이어졌던 민주당 전국 선거 4연승의 시작이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악몽과도 같았다”고 표현하는 연전연패의 서막이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터’로 꼽히는 중도층 유권자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정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야는 안주도, 변화도 아닌 퇴행을 선보이고 있다. 어떤 정당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무당층이 늘어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과연 국민의힘과 민주당 중 누가 먼저 이 ‘퇴행 경쟁’을 끝내느냐에 내년 총선의 승패가 달려 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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