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마음[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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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거스 밴 샌트의 ‘굿 윌 헌팅’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스무 살의 윌 헌팅. 한번 보면 뭐든지 외우는 천재. 입양과 파양을 여러 번 반복한 그는 대학교의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우연히 세계적인 수학자 램보 교수가 낸 문제를 푼다. 윌의 천재성을 알아본 램보 교수는 그의 재능을 꽃피우고자 정성을 쏟는다. 하지만 폭력 전과로 보호관찰 상태인 윌은 법정에서 명령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심리학 책을 섭렵한 윌은 심리학자들이 진저리 치며 도망가게 만든다. 하지만 숀 교수는 달랐다. 그는 오만방자한 윌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램보는 하루라도 빨리 윌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만, 숀은 다르다. 윌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게 급선무라며 맞선다. 제2의 아인슈타인의 출현이라고 흥분하는 램보에게 숀은 천재가 바른 인성을 갖추지 못했을 때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끼치는지를 역설하며 윌을 보호한다. 양부모로부터 여러 번 버려진 윌은 버림받는 게 두려워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밀어낸다. 일부러 위악을 떨고 자신을 하찮게 만든다. 스스로를 사랑하기는커녕 자학하는 윌에게 숀은 ‘네 탓이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심리학책에 적힌 문구가 아닌, 진심으로 한 땀 한 땀 뜬 숀의 위로는 윌의 꽁꽁 언 마음을 녹인다.

지난 일 년간 난생처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부산에 와주면 된다기에 했는데 딱 하루가 아니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학생들의 작품이 머릿속에 집을 지어 일주일 내내 마음은 부산에 있었다. 속았다. 원래 공부와는 담을 쌓은 성격이라 내 식대로 가르치다가 ‘사관학교를 대안학교로 변질시킨다’는 소리도 들었다. 점점 누렇게 떠가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예술가는 자기 작품만큼 자기 몸을 아껴야 한다는, 나도 못 지키는 잔소리를 했다. 감독 데뷔는 운이 70퍼센트다, 이번 생에 못 이루면 다음 생을 기약하면 된다며 위로 아닌 위로도 곁들였다.

램보 교수는 윌의 천재성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됐다. 윌에 못 미치는 자신에게 좌절하면서도 질투는커녕 윌이 재능을 썩힐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젠 알겠다. 나보다 뛰어난 학생을 발견하면 설렌다. 이 학생의 영화를 보고 감동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덩달아 신이 났다. 선생 노릇을 해보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거다. 속기를 잘했다.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나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영화 속 윌과 숀의 작별 인사랑 똑같았다. 고마워하는 윌에게 숀이 답한다. “고마운 건 나야.” 이 지면을 통해 학생들에게 꼭 할 말이 있다. “얘들아, 담배 끊어라!”

이정향 영화감독


#스승의 마음#거스 밴 샌트#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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