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알프스, 베네치아… 황홀한 선율이 이끄는 곳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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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헬레나 애틀리 지음·이석호 옮김/320쪽·1만8000원·에포크

만든 지 3세기 이상 지났는데 여전히 현역일 뿐 아니라 최상의 품질로 평가받는 도구가 있다. 스트라디바리 가문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산(産) 바이올린이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1716년 제작한 ‘메시아’ 바이올린은 2000만 달러(약 25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인으로, 이탈리아 문화 전문 작가인 저자는 웨일스 한 작은 마을의 콘서트에서 들은 바이올린 소리에, 엄밀하게는 그날 연주된 악기에 매료됐다. 연주자는 이 악기를 전 소유자의 이름에 따라 ‘레프의 바이올린’이라고 불렀다. 그에게서 “러시아에서 구입했다. 크레모나에서 제작된 악기지만 가치는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저자는 이 악기와 동시대 크레모나 악기들이 거쳤을 여정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의 전설로 불리는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가문의 자취를 둘러본 뒤 이 악기들의 앞판을 공급해준 이탈리아 알프스의 가문비나무 숲을 찾아간다. 나무들은 포(Po)강을 따라 베네치아로 옮겨졌고, 이곳 상인들이 최상의 나무를 선별했다. 악기와 범선의 돛대 모두 옹이 없는 나무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제작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크레모나의 명장들이 사라진 뒤의 이야기는 악기 거래상과 수집가들이 대신한다. 다음 세대의 악기 명장 과다니니는 부호 코치오가 크레모나 명품들을 수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코치오가 소유한 명품들은 19세기 초 악기상 타라시오의 손을 거쳐 프랑스의 명제작자 뷔욤에게 이어진다. 이렇게 명품 악기들의 ‘유랑사’를 살펴본 저자는 레프의 바이올린이 러시아 남부까지 흘러갔다가 영국으로 오게 된 경로도 샅샅이 탐색한다.

레프의 바이올린의 진짜 정체는 허망했다. 지문처럼 나이테를 스캔해 성장 연대와 지역을 밝히는 연륜연대학(年輪年代學) 전문가는 이 악기가 크레모나산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독일산 악기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이 악기를 둘러싼 남다른 열정은 저자에게 바이올린에 대한 거대한 지식과 추억을, 우리에게는 이 책을 안겨주었다. 원제 ‘Lev′s Violin’(2021).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악기#문화사 여행#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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