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팔린 특허, 한국기업에 ‘부메랑’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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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특허괴물’들, 한국서 사들여
한국기업 대상 소송 5년간 543건

최근 국내 한 대기업은 일부 사업을 접은 뒤 사용하지 않게 된 표준특허를 해외 특허관리전문회사(NPE)에 일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불필요한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수익성을 강화하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일명 ‘특허괴물’로 불리는 해외 NPE들이 국내 기업으로부터 사들인 특허를 무기로 한국 기업에 거꾸로 소송을 남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른바 ‘부메랑 특허’ 리스크다.


NPE인 아이디어허브 자회사 팬텍은 2020년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 팬택의 특허권을 인수했다. 이후 LG전자의 롱텀에볼루션(LTE) 및 5세대(5G) 스마트폰과 통신모듈 장비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에 나섰다. 팬텍은 올해 초 삼성전자를 대상으로도 특허 침해를 주장해 양사 간 협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특허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 대상 NPE의 특허 소송은 최근 5년간 543건에 이른다. 올해도 7월까지 61건의 소송이 제기됐다.

미국에선 NPE가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제품에서 핵심적인 특허인지를 판가름하기 전까지 소송을 중단하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해 발의됐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도 NPE의 소송 남용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NPE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허괴물’, LG 특허 사들여 삼성에 소송… 수천만 달러 요구


부메랑 된 해외판매 특허

무분별한 소송에 기업 부담 커져
“국가핵심기술 포함된 기업 특허
정부 펀드 매입 등 지원 강화해야”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등 3고(高) 악재로 기업 경영 여건이 빠르게 악화하는 가운데 NPE의 특허 소송 남발은 국내 기업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이나 연구기관의 특허를 사들인 뒤 이를 이용해 다른 한국 기업을 겨누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노키아, 에릭슨 등 해외 기업들이 NPE에 특허를 매각하고 소송을 통해 받은 합의금이나 손해배상금을 나눠 갖는 전략을 주로 사용해 왔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의 특허 매각이 활발해지며 해외 NPE들이 국산 특허를 역으로 이용하는 ‘부메랑 특허’ 전략을 펴는 것이다.

지난해 유럽 NPE인 스크래모지 테크놀로지는 LG이노텍이 무선충전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매각한 관련 특허 123건을 50억 원에 사들였다. 스크래모지는 이 특허를 이용해 미국과 독일에서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업계에서는 스크래모지가 요구하는 특허 이용료가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출신이 설립한 회사의 와이파이 특허를 사들인 미국 아틀라스 글로벌 테크놀로지 역시 지난해 삼성전자를 상대로 와이파이 특허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재산권의 하나인 특허권을 매각해 수익을 올리는 것은 타당하지만 이를 악용한 특허 소송이 남발되면서 산업계 전체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외 기업이 매각한 특허를 이용한 특허괴물들의 소송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일부 해외 기업은 경쟁 업체는 물론이고 고객사를 대상으로도 특허 소송을 남발해 타깃이 된 기업들은 막대한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미국 인텔은 올해 영업이익률이 급감하는 등 경영 실적이 악화하자 수익성 개선을 위해 올해 6월 NPE인 다이달루스에 반도체 특허 123건을 매각했다. 이후 다이달루스는 인텔로부터 구입한 반도체 특허를 이용해 퀄컴과 NXP, TSMC, 삼성전자, 벤츠 등 16개사를 대상으로 20여 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인텔 역시 지난해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인 NXP가 매각한 특허로 소송에 걸려 약 22억 달러(약 2조9220억 원)의 막대한 배상금을 물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인텔이 이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NXP뿐만 아니라 고객사까지 소송 대상에 포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무분별한 특허 소송이 국내 기업들의 비용 지출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이뤄지는 특허 소송의 경우 소송비용만 약 1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특허 무효 청구나 특허 협상을 거치는 게 일반적인 관례였다. 하지만 최근 NPE들은 고액의 보상금을 노리고 재판까지 특허 분쟁을 이어가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가 핵심 기술이 포함된 국내 기업의 특허를 정부 주도의 펀드로 매입하거나 NPE에 대한 규제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허권을 사고파는 민간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제어할 수 없다면 정부 차원에서의 적절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 기업들이 특허 소송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소송 대응이 미흡한 기업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송 타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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