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유흥가마다 대마 냄새… 한국 관광객들에 ‘위험한 유혹’[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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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아시아 첫 대마 합법화 파장
태국 정부가 대마 묘목 나눠줘
동남아-동북아 마약 확산 비상
마약류 국내 반입 위험 신호등

11일 태국 북동부 우타이사완의 한 사원에 마련된 ‘어린이집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분향소에서 한 
주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영유아 24명을 포함해 38명을 살해한 범인은 마약 소지 혐의로 해임됐던 전직 경찰관으로 사건 당일 
마약 관련 재판을 받았다. 우타이사완=AP 뉴시스
11일 태국 북동부 우타이사완의 한 사원에 마련된 ‘어린이집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분향소에서 한 주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영유아 24명을 포함해 38명을 살해한 범인은 마약 소지 혐의로 해임됐던 전직 경찰관으로 사건 당일 마약 관련 재판을 받았다. 우타이사완=AP 뉴시스
6일 태국의 한 어린이집 안팎에서 영유아 24명을 포함해 38명을 살해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총기 난사범은 마약 범죄자였다. 범인인 빠냐 캄랍은 마약 소지 혐의로 해고된 전직 경찰관이었다. 그는 사건 당일 마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나온 직후 범행을 저질렀다.

이번 참사에서 범죄의 원인 중 하나가 마약이었다는 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태국 정부가 최근 아시아 최초로 대마를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태국은 강도 높은 ‘무관용’ 마약 규제 국가로 유명했지만 2019년 들어선 새 정권이 기존 정책을 뒤집었다. 요즘 태국은 마약에 관대한 네덜란드에 빗대 ‘아시아의 암스테르담’이라 불린다.

태국을 중심으로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로 마약이 확산되면서 이들 나라와 우리나라를 잇는 마약 유통채널이 활성화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태국 ‘마약 엄벌주의→대마 합법화’ 선회
어린이집 총기 난사범 캄랍이 소지했던 마약은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진 ‘야바’다. 필로폰(메스암페타민)과 카페인을 섞어 만든 야바는 각성 효과가 강력해 1970년대까지 태국의 장거리 운전자들이 잠을 쫓기 위해 주유소에서 구매하곤 했다. 또한 태국에서는 약물 제조에 쓰이는 야생 대마초 ‘간자’ 등 다양한 마약류 재배가 성행했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3국 접경지대를 일컫는 ‘골든 트라이앵글(황금 삼각지대)’은 1960년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지로 악명을 떨쳤다.

태국은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1년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에 동조해 마약 소지와 유통을 법으로 금지했다. 1983년에는 ‘도이퉁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아편 생산을 전면 금지했다. 2000년대 들어선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마약밀매상이 갈 곳은 감옥이나 무덤뿐”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잔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당시 태국 교도소 수감자의 약 70%가 마약 관련 범죄자였다. 조직적으로 마약을 생산·거래한 자는 최대 사형에 처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엄벌주의 원칙이 올 6월 뒤집어졌다. 2019년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개인이 의학적 목적으로 대마를 재배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향정신성화학물질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함량이 0.2% 미만인 대마 제품 생산도 허용됐다. 미국공영라디오(NPR)는 “태국 정부가 세계 의료용 마약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농민들을 대마 생산으로 유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6월 10일 태국 부리람에서 열린 대마초 묘목 무료 배포 행사에서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보건장관이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마약 범죄를 무관용 엄벌주의로 다스려 왔던 태국은 2019년 쁘라윳 짠오차 총리 취임 이후 정책을 선회해 올 6월 대마초 재배·판매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사진 출처 태국 보건부 ‘의료용 대마초’ 공식 홈페이지
6월 10일 태국 부리람에서 열린 대마초 묘목 무료 배포 행사에서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보건장관이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마약 범죄를 무관용 엄벌주의로 다스려 왔던 태국은 2019년 쁘라윳 짠오차 총리 취임 이후 정책을 선회해 올 6월 대마초 재배·판매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사진 출처 태국 보건부 ‘의료용 대마초’ 공식 홈페이지
태국 정부는 100만 개의 대마초 묘목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아누틴 찬위라꾼 보건장관은 대마초 박람회에서 참가자들에게 “오늘 부자가 되지 못한다면 언제 부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홍보했다. 그가 속한 품짜이타이당은 2019년 총선에서 가정용 대마 재배 합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대마당(黨)’이라고 불렸다.

마약을 불법으로 소지·복용한 행위에 대해 처벌도 완화됐다. 태국 현지 매체 방콕포스트는 “범죄 조직에 대해선 여전히 가혹하지만, 개인 범죄자에게는 처벌보다는 치료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변화된 방침에 태국의 대마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요즘 태국과 주변국의 유흥가에선 길가에 대마 냄새가 진동한다고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다양한 품종의 대마의 맛과 효능을 홍보하는 게시물도 자주 눈에 띈다.

태국의 인기 휴양지 꼬사무이에서 25년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인 칼 램은 호주 ABC방송 인터뷰에서 “요즘 전화나 이메일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마리화나를 판다는 말이 진짜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 “총선 민심 겨냥해 마약 합법화한 듯”

문제는 태국 정부가 마약 관련 규제를 완화한 목적이 마약산업을 양지로 끌어올려 투명하게 관리하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신들은 태국 정부가 새로운 ‘환금작물’을 합법화함으로써 관광·농업 분야 수익을 늘리고, 내년 총선에 대비해 민심을 얻으려 한다고 분석한다. 교도소의 과밀 현상을 해소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에 만연한 마약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6월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지난 한 해 동안 동북아·동남아 지역에서 압수된 필로폰이 총 172t에 달한다고 밝혔다. 필로폰 1회 투약량이 통상 0.03g인 점을 감안하면 총 57억 회분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특히 도소매 가격이 지난해 사상 최저로 하락하면서 알약 형태의 필로폰 압수량은 처음으로 10억 개를 돌파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무려 7배로 급증한 것이다.

미 군사전문지 인도태평양디펜스포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경 간 단속이 막힌 데다, 지난해 미얀마에서 벌어진 쿠데타로 정부의 대응력이 떨어지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마약 밀매업자들과의 싸움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정책 변경 후 기존 수감자들 상당수는 석방됐고 마약 관련 범죄 기록도 삭제됐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더선데일리 등은 태국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인접 국가들에 의료용 대마 산업 합법화 ‘노하우’를 전수해줄 예정이라고 전했다.

태국 정부는 안전장치가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미성년자와 임신·수유 중인 여성에게는 대마를 판매할 수 없고, 공공장소에서 대마를 복용하는 것도 금지됐다는 것이다. 아누틴 보건장관은 “마약으로서의 대마초 사용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태국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대마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은 가짜 뉴스”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마 판매량과 농도, 용도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콕포스트는 “정부는 오락용이 아닌 의료용 생산·소비만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경계가 이미 흐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약물정책컨소시엄의 글로리아 라이 아시아 담당 이사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대마초를 키울 수 있다면 처방전 없이도 대마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공공장소가 아닌 사유지에서는 대마를 피우더라도 누군가 신고하기 전까지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도 법의 허점이다.

태국 내에선 대마 합법화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어린이집 총격 사건을 계기로 찬반 논쟁이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건 다음 날 쁘라윳 총리는 마약 억제를 긴급 국가 의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태국의 국가부패방지위원회(NACC) 위차이 차이몽꼰 사무총장도 13일 “필로폰 가격이 급락하면서 확산세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대응 강화를 예고했다.

의료계에서도 마약 남용과 부작용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한다. 쭐랄롱꼰대 찬차이 시티판 의과대학장은 “젊은이들의 대마초 사용이 장기적으로 인지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태국 의사 1000명은 의회에서 법이 개정될 때까지 ‘대마초 비범죄화’ 중단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의료용 대마가 과잉 처방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태국 수도 방콕에서 10년째 거주 중인 한국인 A 씨는 이달 초 불면증 치료를 위해 방콕의 한 병원을 찾았다가 의료용 액상 대마를 처방받았다. A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치료제에 대마를 뜻하는 초록색 잎사귀 모양이 그려진 것을 보고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년 5월 태국 총선을 앞두고 현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들은 다시 총기·마약 규제를 강화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1야당인 프아타이당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도 해외 도피 중 이번 사건을 접한 뒤 정부에 마약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 한국인 관광객들 마약 노출 위험 커져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의 마약 확산은 해당 지역 관광객이 많은 우리나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협 요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주요국 한국인 출국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국가는 일본과 중국에 이어 베트남, 태국, 필리핀 순이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동남아 국가들을 찾는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마약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휴가차 베트남 하노이를 찾은 직장인 정모 씨(29)는 저녁을 먹으러 방문한 거리에서 3시간 사이 3번이나 마약 구매 의사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정 씨는 “마음만 먹으면 하노이에서 마약을 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 보였다”며 “(모든 마약이 불법인) 하노이가 이 정도인데, 대마초가 합법인 다른 동남아 국가는 얼마나 심각하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각국의 방역 정책이 완화되고 국제 물류운송이 재개되면서 동남아 주요 국가와 한국을 잇는 마약 유통채널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마약 범죄 전문가인 박진실 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내에 유통되는 합성 대마 상당량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을 통해 들어온다”며 “한국인 판매책들이 해당 국가들로 도피해 한국으로 반입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말 한중일 3국이 신흥 마약 유통 경로로 떠오르면서 ‘화이트 트라이앵글’로 지목됐던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우리나라에 이미 외국산 마약이 너무 많이 퍼져 주워 담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국내에도 마약 관련 범죄조직이 많은 만큼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마약 유통 경로에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약 수요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에는 강원도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야바를 밀반입시킨 태국인 65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관세청은 태국 당국과 마약 합동단속을 통해 올 5월부터 지난달까지 우리나라로 밀반입하려던 필로폰 약 22kg과 야바 약 29만 정을 적발했다.

이들은 공동 숙소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집단적으로 마약을 투약하더라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 수가 늘면서 불법 체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클럽 주점 등 유흥업소가 늘어나는 점도 이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19로 각국이 봉쇄된 기간 동안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소규모 네트워크를 통해 자체적으로 마약을 유통·소비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순 투약을 넘어 해외에서 마약을 유통·판매하는 일로도 넘어가면 동남아 현지 마약이 국내에 토착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인들이 의도적으로 찾지 않더라도 마약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마약이 합법화된 동남아 국가에서 입국하는 국민에 대해선 소지품 검사를 강화하는 등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마약과 접촉할 소지를 줄이기 위한 예방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남아 주요 국가에 마약 단속 인력 파견을 강화해 현지에서 마약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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