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양향자 “반도체 전쟁 지면 ‘기술 속국’… 기업 발목잡기 멈춰야” [인터뷰]

입력 2022-08-17 03:00업데이트 2022-08-17 09:04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K칩스법안’ 주도한 양향자 여당 반도체특위원장
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1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반도체 지원은 단순히 한 기업을 지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면서 ‘반도체 강국’ 한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원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4차 산업혁명 시기 핵심 자원인 비메모리 반도체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비메모리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 세계 1위인 대만 TSMC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만큼 국내 기업의 이 같은 계획은 평상시에 총력전을 펴도 달성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한 미국의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동맹’ 추진으로 반도체 시장이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데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마저 꺾였다. 마이크론, 인텔,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투자를 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반도체 특별법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은 이달 초에야 반도체 산업 지원과 인력 양성을 위한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안인 ‘K칩스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을 주도한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무소속)을 만나 한국 반도체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대만 따라가기도 버거운 위기

―과거 D램 가격 등락이나 스마트폰 수요 변동에 따라 반도체 위기설이 나왔다가 금방 들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의 위기는 예전과 다른가.

“지금의 위기는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핵심인 비메모리, 즉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원인이 있다. 경기 등락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30%, 비메모리 70% 정도의 비율로 양분돼 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절대 강자였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점유율은 3% 정도다.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가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인텔 등이 추격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패배하면 기술 속국, 신식민지가 될 수 있다.”

―‘기술 속국’ 우려는 다소 과한 기우로 들린다.

“글로벌 기술 전쟁 시대다. 기술이 뒤처진 나라는 기술이 앞선 나라에 밀리고 종속될 수밖에 없다. 올 4월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를 보라. 따지고 보면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부채가 급증하다 보니 중국에 종속되는 길을 간 것이다. 세계의 가치사슬에서 한국의 기술적 가치가 없어지면 존립 자체가 어려워진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공략을 선언한 게 2019년이다.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지는 이유는 뭔가.


“첫째는 인재 부족이다. 이미 20년 전에 삼성 내부에서 인력 확보에 경고등이 들어와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인력을 데려다 썼다. 지금 그 인력들은 모두 중국으로 갔다. 둘째는 국가의 지원 문제다. 정책적으로 대기업을 지원한다고 하면 특혜라는 시각으로 봤다. 대기업이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모두 혜택을 보는 구조를 외면하니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은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다. 국내 인력풀이 부족하면 외국에서도 데려올 수 있지 않나.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이미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기업인 만큼 글로벌 기준에 따라 대우를 해줘야 인재가 몰린다. ‘정보기술(IT) 대기업 임원이 왜 돈을 많이 받느냐’는 인식 때문에 적정한 대우를 하기 어렵다. 충분한 보상을 못하는 현실에서 외국 인재 유치는커녕 국내 인재도 뺏길 판이다.”

―인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힘든 배경에는 반기업 정서도 있어 보인다. 대기업을 좋은 직장으로 평가하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이중적인 시각, 왜 생겼다고 보나.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승자독식 구조가 심해지기 마련이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서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계층 간 갈등이 커지는 것이다. 국가와 정치가 이 갈등을 조정했어야 한다. 부자가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사회안전망을 키우는 역할을 진작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립대 기부 입학을 허용하는 반면 반값등록금 같은 제도는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돈 많이 번 사람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고 징벌적으로 세금을 매기면서 반기업 정서를 조장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칩4’ 가입하되 中시장 유지해야

―미국 주도의 칩4 동맹 가입을 두고 한국이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가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도체를 집에 비유하자면 미국은 집주인, 한국은 임차인 격이다. 미국의 장비, 기술, 특허, 인프라 없이는 반도체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칩4 동맹에 들어가되 한국 주요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만큼 ‘중국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칩4 동맹 자체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미국이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말자’는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 정도의 요구는 할 수 있다. 동맹의 주축인 미국이나 일본, 대만이 중국 입장을 배려할 리 없고, 중국 현지에 기업이 나가 있고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만이 중국과 관련한 설득을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을 잘 따져본 뒤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칩4 동맹은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는 미국,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인 한국, 소재와 장비 분야에 특화된 일본, 파운드리 분야 1위인 대만을 모아 서방 중심의 공급망 체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한국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열리는 칩4 예비회의에 참가하기로 했다. 양 위원장은 “한국이 미국과는 ‘전략적 동맹’을 맺는 대신 중국과는 ‘협력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반도체특위는 K칩스법에서 세제 혜택을 대폭 늘렸다. 세금을 줄여 주면 기업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나.

“기업은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세금뿐 아니라 소비시장, 부품 공급망, 노동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 그럼에도 과거 경험에 비춰 보면 세액공제가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순이익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기업으로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높을수록 투자를 늘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 반도체 장비 1개를 살 계획이었다가 세액공제 영향으로 2개를 사게 되고 그 결과 일자리가 늘고 공기가 단축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간과하고 있으니 ‘돈 많은 기업에 혜택을 주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K칩스법’은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대기업의 경우 6%에서 20%로 △중견기업의 경우 8%에서 25%로 △중소기업의 경우 16%에서 30%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이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을 초과해 투자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5%를 추가 공제해 준다. 이렇게 하면 미국의 반도체 육성법에 담긴 세액공제율 25%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반도체 지원해 ‘산업생태계’ 조성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반도체 분야에 지원이 과도하게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가총액 100조 원짜리 기업으로 가는 방법은 2가지다. ‘큰 시장’과 그 시장을 주도할 ‘기술력’이다. 한국의 경우 이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반도체다.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등 유망 산업이 많지만 모두 반도체 없이는 안 된다. 다른 산업으로의 확장도 반도체에서 시작된다. 반도체 지원은 한 산업, 한 기업을 지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 차원에서 봐야 한다.”

―세금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 보이는데….

“그렇다. 무엇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여온 기업 발목 잡기 행태를 멈춰야 한다. 2015년 착공한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의 경우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5년이 걸렸고, SK하이닉스의 용인 캠퍼스는 여주시와의 용수 문제로 현재 착공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국내 기업의 오프쇼어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분야에서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반도체 엔지니어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나.

“각자의 눈에 ‘불’을 켜야 한다. 생뚱맞지만 여상 출신으로 삼성에 입사한 직후만 해도 자신을 ‘쌀 속의 돌멩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낮춰 보는 ‘거지 근성’이었다. 이런 잘못된 마음가짐을 버리고 나서야 주인처럼 일할 수 있었다. 손톱만 한 반도체에 전 세계를 담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라. 누가 시켜서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뛰고 그런 뒤 ‘워라밸’을 이야기하자.”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1985년 고졸 학력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28년 만인 2013년 메모리사업부 상무에 올랐다. 2016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에 입문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을 지냈다. 2020년에는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지난해 민주당 반도체기술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한 데 이어 올 6월부터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