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Interview]“승진하고 싶은가? 그럼 날 대체할 후임 키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혜인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

김혜인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는 그룹 내 경영 이사회의 유일한 여성 임원으로서 인사, 문화 및 포용성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그를 서울 중구 을지로 BAT코리아에서 만나 글로벌 기업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 다양성 전략에 대해 들었다. 
양창모 포토그래퍼 제공
김혜인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는 그룹 내 경영 이사회의 유일한 여성 임원으로서 인사, 문화 및 포용성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그를 서울 중구 을지로 BAT코리아에서 만나 글로벌 기업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 다양성 전략에 대해 들었다. 양창모 포토그래퍼 제공
최근 글로벌 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다양성’과 ‘포용성’이다. 전 세계 175개국 이상의 시장에 진출해 제품을 판매하고, 5만2000명 이상의 다국적 임직원이 근무하는 영국의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 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BAT는 세계 최대 담배 회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본사에만 81개국 출신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을 아우를 만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런 글로벌 기업에서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 즉 인사, 문화 및 포용성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수장은 바로 한국인 여성인 김혜인 최고인사책임자(CHRO)다. 김 CHRO는 2019년 1월 BAT그룹 경영 이사회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인 임원으로 발탁됐다. 2008년 BAT코리아에 입사한 뒤 14년간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홍콩, 영국 등 각국에서 그룹 인사관리를 책임져 온 그로부터 한국인으로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과 그룹의 전략 및 정책 실행을 감독하는 경영 이사회에 합류하기까지의 여정을 직접 들어봤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2년 8월 2호(351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기억에 남는 인사관리 성과가 있나.

“여러 나라에서 인사관리를 총괄했지만 2013년 한국에 인사총괄 부사장으로 돌아왔을 때가 회사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가 가장 많이 산적해 있던 시기였다. 가격 전략이 뜻대로 안 풀려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고, 매출이 안 나오다 보니 노사 간 긴장이 팽팽했다. 회사가 초기에 긴장 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해 우수 인재들이 많이 떠났다. 공장 생산량이 줄고 영업 성과급까지 깎이다 보니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이때 생각한 게 결국 갈등의 원천은 ‘회사가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라는 불만이 쌓여서인 만큼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는 데서 출발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피플 베이직(People Basic)’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관리자가 기본부터 다시 다지자’는 취지로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떤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줬나.

“영업 직원들이 현장에서 판촉이나 캠페인 등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하면 하루 이틀 내 반드시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금요일에 업무 관련 요청이 접수되면 어떤 부분은 반영이 가능하고, 어떤 부분은 안 되는지 반드시 월요일까지는 답변을 하도록 했다. 또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회사가 바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직원이 직접 요청한 결과가 반영돼 업무가 효율화되고 성과가 날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이렇게 본인들의 불만과 제안이 받아들여지니 주인 의식과 사기가 높아졌고, 노사 간 대립 관계도 완화됐다.”

―인사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시장 상황에도 해박해야 할 것 같다.

“인사 관리에 국한하지 않고 비즈니스와 연계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시장 상황과 비즈니스에 맞는 인력 재편 또는 재교육을 제안하니 CEO 등 최고경영진은 물론이고 마케팅팀, 재무팀 등 회사 내 다른 조직 구성원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인 화법을 쓰고, 강한 어조로 말하더라도 합리적인 지적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면 일에서의 마찰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비화하지 않는다.”

―어떤 리더십을 지향하는가.

“팀원 개발을 중시한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후임자를 개발해 놓지 않으면 당신이 앞으로 승진을 하기 어렵다’고 분명히 말한다. 내가 떠나도 언제든 후임자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어야 내가 그 직책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후임을 양성하라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에서 홍콩 지역본부로 갈 때도, 홍콩 지역본부에서 영국 본사로 갈 때도 항상 직속 후임자가 내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런 믿음이 쌓여야 후배들도 ‘저 사람 밑에서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더 따르게 된다. 결국 조직 문화는 ‘누가 고위직에 올라가느냐’, ‘어떤 행동이 용납이 되고, 용납이 안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승진 결정이 중요한데 BAT는 팀원을 개발하지 않고 본인만 스타 플레이어가 되려는 사람을 승진시키지 않는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력을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제품을 판매하는 국가나 고객의 기반을 그대로 반영하는 직원 풀을 갖추기 위해서다. 그래야 현지 시장과 소비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서 정보기술(IT), 전기전자, 소비재, 제약 산업으로도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맞춰 다른 산업에 몸담고 있었던 터라 관점이 다른 새로운 인력을 기존보다 2배 더 채용하기로 했다. 또한 건강상 유해성을 줄인 대체 품목을 확대하면서 여성 고객층이 확대될 전망이라 이를 반영해 여성 직원의 비율도 늘렸다.”

―이들 모두가 조직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쓰나.

“수치상 나타나는 지표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인재 풀이 존재해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러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왔을 때 자신의 생각과 차이점을 자유롭게 말하고 그 의견을 회사가 기꺼이 활용하는 포용적 문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리쿠르팅 구호를 ‘당신만의 차이점을 가져와라’로 정한 것도 다른 국적, 산업, 역량, 지식, 경험이 회사의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김혜인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bat#글로벌 기업#인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