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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북한의 대량아사 하늘에 달렸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입력 2022-07-07 03:00업데이트 2022-07-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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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들은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가 지난달 14일 가정 상비약품을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퍼진 황해남도에 보냈다며 이를 ‘사랑의 불사약’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주성하 기자
지난달 중순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가정 상비약품을 본부 당위원회에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틀 뒤 김정은을 따라 김여정과 현송월 등 노동당 간부들도 가정의약품을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퍼진 황해남도에 보내는 사진들이 노동신문에 나왔다.

북한 매체들은 사랑의 불사약이라고 선전했지만 이면을 보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북한의 사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창궐했던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을 말하는데, 약이 없으면 코로나보다 치사율이 훨씬 더 높다.

둘째, 통치자의 가정 상비약품까지 털어야 할 정도로 북한 창고들이 텅텅 비었다. 4월 말부터 퍼진 코로나로 약품은 물론이고 격리된 주민에게 공급할 식량까지 바닥났을 것이다.

셋째, 북한 식량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곡창지대 황해남도가 지금 큰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와 콜레라 등 전염병도 문제지만 이에 못지않은 위기는 자연 재해다. 북한은 올봄 황해남도에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꼽히는 극심한 가뭄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가뭄에 코로나까지 겹쳐 노력 동원에 의존하는 모내기가 큰 차질을 빚었다.

올봄 극심한 가뭄은 북한 식량 생산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황해도, 평안도 지역이 똑같이 겪었다. 봄 농사를 망쳐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이 들려올 즈음 황해남도에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북한이 발표했다.

하늘도 올해는 북한을 전혀 봐주지 않기로 한 듯하다. 극심한 가뭄에 이어 6월 말∼7월 초에 폭우가 황해도와 평안도에 쏟아졌다. 단 며칠 동안 300mm 이상 폭우가 내려 겨우 모내기를 마친 논밭들이 침수됐다. 3년째 비료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연 재해까지 겹쳤으니 올가을 북한의 작황은 안 봐도 뻔하다.

흉작이 들면 식량을 수입이라도 해야 하는데, 중국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지금 북-중 무역을 완전히 차단했다. 예비 식량마저 없으니 이제 굶주리는 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각종 전염병까지 돌게 되면 고난의 행군의 재현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에 맞닥뜨렸다.

문제는 지금이 7월 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사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태풍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올해는 이상 기후로 세계 곳곳이 고온 현상에 시달리는데, 이러면 태풍의 위력이 커진다. 만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에 올여름 강력한 태풍이라도 덮치면 치명타를 입게 된다. 태풍이 아니라 극심한 가뭄이나 고온 현상이 올 수도 있다. 이는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는 오롯이 하늘에 달렸다는 의미다.

북한에서 대량 아사가 발생해도 국제사회가 도와줄 여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식량 부족에 직면했고, 원유를 비롯한 모든 물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위의 상황을 김정은 시점에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나라 창고가 텅텅 비었다. 비었으면 채워야 하는데, 자연재해로 불가능해 보인다. 전염병까지 창궐하고 있다. 외부에 손을 내밀려니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했다. 러시아도 전쟁을 치르느라 제 코가 석 자다. 게다가 오랜 대북제재로 돈도 없는 데다 세계 물가가 너무 뛰었다. 집권 첫 일성으로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고난의 행군에 직면해 주민이 무리로 굶어죽게 되면 체제의 내구성에 큰 균열이 생긴다.”

더욱 허탈한 일은 위의 위기가 김정은의 노력으로 극복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노력을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서쪽, 북쪽 국경이 막혔으면 남쪽을 활용해 대책을 찾아도 모자랄 처지에서 북한은 여전히 한국 정부에 악담을 퍼붓고 있다.

북한이 고작 찾은 위기 극복 대책은 케케묵은 정신력 타령을 다시 꺼낸 것이다. 노동신문은 1일 “상반년 기간 우리가 건국 이래 일찍이 없었던 시련과 난관을 겪었다고 하지만 하반 년에 들어선 지금 형편은 더 어렵다. 최우선 중시해야 할 사업은 대중의 정신력을 총 폭발시키기 위한 사상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신력의 한계는 북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안다. 영양실조 환자가 정신력을 총 폭발하면 죽을 날이 더 빨라질 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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