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김정숙 여사의 옷장과 투명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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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3월 3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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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인 옷값 사비로 냈다지만
4년 전엔 그 자랑거리 왜 감췄나
본질은 옷값 아닌 특수활동비 폐지
고위직 ‘세금횡령 면책특권’ 없애라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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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나이 들수록 옷장 문 열 때마다 화가 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입고 나갈 옷은 없는데 철철이 옷 해줄 능력 없는 ‘삼식이’ 남편이 미워진다는 거다. 내가 나이 먹어 옷태 안 난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남 탓만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계절은 또 바뀌는데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 액세서리 구두 등 청와대가 공개를 거부한 의전비용과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때라도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30일 밝힌 것처럼 “김 여사의 의상 구입에 쓰인 특활비는 한 푼도 없다. 사비(私費)로, 카드로 결제했다”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면 ‘×멜다’ 같은 험한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대통령이고 2021년 연봉이 2억4065만 원이다. 대통령 부인이 남편 돈으로 좋은 옷 사 입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청와대는 그러지 않았다. 법원이 “국익을 해칠 우려나 공무집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없다”며 공개하라고 판결했음에도 불복해 항소했다. 문 대통령 임기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 15년간은 감춰두겠다고 국민 염장을 지른 셈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3월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은 대통령 및 김 여사의 의전비용이 특활비에서 지급됐는지 여부였다. 김 여사의 옷값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옷값도 함께 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은 특활비 폐지였고 김 여사의 옷값은 ‘미끼’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들 김 여사 옷값에만 신경 썼지 문 대통령의 고급 양복엔 관심도 없다.

넉 달 후 청와대가 김 여사의 옷을 사비로 산다고 답하지 않은 것은 의아하다. 탁현민의 뒤늦은 사비 주장을 믿기 힘든 이유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공문을 통해 "(특활비) 세부 지출내역에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외교관계 등 민감한 사항이 있어 공개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특활비 내역에서 김 여사의 옷값이나 수량 또는 사이즈 같은 민감 사항이 공개될 경우, 국민의 심신을 자극해 국익이 현저히 훼손될 우려가 있는 건 맞다. 만일 대선 전에 김 여사 옷값 논란이 터졌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득표에서 최소한 10%포인트는 깎아먹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탁현민이 사비론을 강조한 30일,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는 “2017년 5월 김 여사에게 구두 6켤레를 켤레당 25만 원에 판매했고 보좌관이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문 정권의 나팔수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냄새가 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김 여사의 옷값 논란을 보는 것은 편치 않다. 프랑스 혁명 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혐의 희생자’로 단죄됐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서울경찰청이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30일 김 여사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도 진영과 상관없이 마음 아프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관저운영비나 생활비도 특활비로 처리하던데 생활비는 대통령 봉급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혀 국민을 경악시켰다. 청와대에선 지금껏 생활비조차 특활비로 썼다는 사실이 기막혀서다.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고 현금으로 지급되는 ‘묻지 마 예산’이어서 납세자연맹에선 귀족들의 ‘세금횡령 면책특권’으로 본다. 국정원과 청와대 등 19개 기관에 배정된 특활비가 작년에만 9838억 원이었다. 할 말은 아니지만 김 여사의 옷값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에 비하면 거의 새 발의 피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특활비를 둘러싼 ‘법무부·서울지검의 돈봉투 만찬사건’을 감찰했다. 공석이 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윤석열을 깜짝 발탁해 오늘날 대통령 당선인으로 마주하게 됐다. 임기는 신분사회를 연상시키는 특활비 폐지와 함께 끝냈으면 한다.

김 여사가 기를 쓰고 방문했던 노르웨이에선 총리가 예산을 쓰고도 영수증을 안 내면 형사책임은 물론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정직하게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 대통령도, 대통령 부인도 그래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김정숙 여사#세금횡령 면책특권#특수활동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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