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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약 건보 적용, 병사 월급 인상… 李·尹 대선 공약 포퓰리즘 경쟁 논란

입력 2022-01-16 10:14업데이트 2022-01-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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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비전 큰 그림 실종… 미끼 던지는 저차원 공약 피해야” 새해 들어 여야 대선 후보들이 본격적인 공약 경쟁에 돌입했지만 득표를 의식한 ‘지엽적 환심 사기’에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 캠프는 ‘세대 맞춤형’ 공약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국가의 장기 비전이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약 제시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탈모 치료제 국민건강보험 적용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병사 월급 200만 원이 대표적이다. 각각 최대 1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탈모인과 병역 문제에 민감한 2030세대 남성을 타깃으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책 분야 전문가들은 “공약 취지에는 공감하나 국가 재정 상황, 다른 정책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 캠프는 1월 14일 탈모 치료제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확정했다. 이 후보가 1월 2일 “탈모약 비용이 부담돼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는 한 30대 남성의 의견을 두고 “소확행 공약으로 연결하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단초였다. 해당 공약은 민주당 다이너마이트 청년 선거대책위원회가 ‘리스너 프로젝트’를 통해 수렴한 시민 의견에서 비롯됐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공약이 화제가 되자 이 후보는 좀 더 구체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1월 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비전·국민통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신체의 완전성은 중요한 가치인데,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에게도 탈모 관련 지원을 안 해준 것이 현실”이라며 “탈모가 국민건강보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암, 희귀질환 비급여 처방 개선이 급선무” 지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소확행’ 공약으로 확정한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동아DB, 사진 제공 · 더불어민주당
문제는 재원이다. 이 후보는 탈모 치료제 국민건강보험 적용 필요성 및 예산 규모와 관련해 “해당자가 1000만 명이나 된다더라. 옆에 있는 가족도 스트레스 받는다” “보험으로 처리하면 약값이 확 떨어진다. (재정은) 700억~800억 원 든다고 하더라” “재정 부담이 거의 들지 않는다”(1월 9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지하철 타고 민심 속으로’에서 발언 중)고 말했다. ‘700억~800억 원’이라는 수치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방송토론콘텐츠단장 박주민 의원의 다음 발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탈모 치료제 시장이 약 1100억 원 규모라고 한다. 건보(국민건강보험)를 적용하면 이 중 700억 원 정도를 책임 져야 한다. 건보 적용 대상이 되면 약값이 떨어지므로 700억 원이 채 안 될 것이라고 본다.”(1월 7일 KBS 라디오와 인터뷰 중)

이 후보는 1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탈모치료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겠습니다’ 제하 글에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적정 수가를 결정하면 건강보험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시절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00억~800억 원이라는 추산은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 후보 측 주장처럼 국내 탈모인을 1000만 명으로 잡으면 1년에 3조6000억 원이 필요하다”며 “탈모인의 3분의 1 정도만 약물 치료를 받는다고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조2000억 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페시아 등 현재 시판되는 탈모 치료제의 한 달분 가격이 4만5000원 정도인데, 이 중 70%인 3만 원을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면 한 해 36만 원이 소요된다”고 추산했다. 이 교수는 “국민의 신체 완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미용 목적 성형수술도 지원해야 하는데, 그런 식이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난다”면서 “이 후보의 탈모 치료제 공약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모 의대 교수는 “사람에 따라 탈모도 심각한 스트레스일 있지만 그 자체로 생명이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확행보다 암이나 희귀질환의 비(非)급여 처방을 챙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안보 태세 저해 우려되는 위험한 공약”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개한 ‘병사 봉급 월 200만 원’ 공약. 윤석열 대선 후보 페이스북 캡처, 동아DB
윤 후보는 2030세대 남심(男心)을 저격하는 공약을 내놨다. 1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짧은 글을 올려 군 복무 보상을 강화하자고 나선 것이다. 이튿날엔 “현재 병사 봉급으로 연간 2조1000억 원이 소요된다. 최저임금으로 보장할 경우 지금보다 5조1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엄격한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200만 원이라는 액수는 올해 최저임금을 고려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이다. 하루 8시간, 주40시간 근무할 경우 월급은 191만4440원. 이를 육해공군·해병대 병사 숫자 약 36만 명(2020년 국방백서 기준)에 대입하면 7조2000억 원이라는 액수가 나온다.

병사 월급 인상은 윤 후보만의 공약은 아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최저임금제에 맞춰 급여를 단계적으로 인상해 2027년에는 병사 월급 200만 원 이상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11월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도 “병사 초봉 300만 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당초 윤 후보 측은 병사 월급을 급격히 올리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장영일 상근부대변인이 지난해 12월 25일 이 후보의 병사 급여 인상 발언과 관련해 “앞으로 4년 후엔 하사(2022년 기준 1호봉 초봉 월 170만5400원)와 병장 급여가 비슷해진다”며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 공식 입장이 보름 만에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서울 모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병사 월급 인상은 윤 후보만의 공약은 아니지만 핵심 지지층인 20대 남성에게 소구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며 “선거대책위원회 내홍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을 조기에 만회하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 후보 등이 공약한 급격한 병사 월급 인상은 가능할까.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병사 처우 개선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문제는 재원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병사에게 9급 공무원(2022년 기준 일반직 초봉 월 168만2700원)에 준하는 월급을 주려면 부사관, 장교는 물론이고 전체 공직자 급여체계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며 “국방 예산을 크게 증액하지 않고 인건비만 높이면 전력투자나 훈련에 필요한 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력투자비를 일방적으로 감액하고 급여만 높인다면 이는 당선을 위해 안보 태세를 저해하는 위험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게 신 대표의 판단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병사 급여를 급격히 인상했다 신무기 개발 등 전력 개선에 필요한 예산이 위축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군 복무로 국가에 헌신한 이들에 대해선 취업 시 가산점 재도입 등 다른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포퓰리즘적 공약 경쟁을 하는 와중에 국가 재정건전성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12월 3일 국회를 통과한 2022년 본예산 기준 국가채무는 1064조4000억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에게 국가 재정 상황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정책을 주문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잇달아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고 있는데 국가 재정을 고려하면 우려스럽다”며 “국가채무 문제는 보수나 진보 같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당장 한국이 직면한 위기”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기업에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면서 국가경제 영속성은 왜 외면하느냐”며 “출생률이 급감하는 가운데 나라 빚이 늘어나는 한국 현실을 고려해 재정건전성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의 큰 그림 없이 사실상 매표 행위에 가까운 인기 영합적 공약이 이어지고 있다”며 “뚜렷한 정치철학 없이 유권자에게 미끼를 던지는 방식의 저차원적 공약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선 후보들이 재정정책도 함께 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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