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정체성 고민… MBTI 유행 속 짠한 자화상[광화문에서/김현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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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DBR 편집장
김현진 DBR 편집장
올 한 해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주근깨 소녀. 개성 있는 외모로 Z세대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로지는 버추얼 휴먼, 즉 가상 인간이다. 로지가 ‘인격’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오로지), 나이(22세)와 함께 공개한 또 하나의 정보는 MBTI였다. 로지의 MBTI가 실제 20대 여성 사이에 많은 ENFP(재기 발랄한 활동가형)임을 보고 소비자들은 그의 성격을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성격유형검사 중 하나로 사람들이 저마다 선호하는 인식 방법(감각-직관), 판단 방법(사고-감정), 힘을 얻는 방법에 대한 태도(외향성-내향성), 외부 세계에 대한 경향성(판단-인식)이 있다고 본다. 이런 선호도를 조합해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한다. 196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특히 최근 2년 사이,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유행하고 있다.

MBTI가 특히 팬데믹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온라인 리서치 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2022’에 따르면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인간관계에 결핍을 느끼고 있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찾곤 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심리 검사로라도 확인하려는 경향이 커졌다. 올해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80.6%에 달했고 ‘MBTI 결과를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75.2%에 달했다.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MBTI를 채용, 부서 배치 등에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심지어 채용 우대 사항으로 ‘MBTI가 E(외향성)로 시작하는 사람’을 내건 기업까지 등장해 논란이 됐다. 기업에서의 MBTI 활용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여러 연구에서 MBTI 검사를 다시 받은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첫 번째와 다른 결과를 얻었다며 과학적 허점을 지적했다.

바르셀로나 에사데경영대학원의 바르트 더랑허 교수 등에 따르면 MBTI가 인기를 끄는 것은 ‘범주적 사고’의 매력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데이터를 단순화하고 구조화하기 위해 정보들을 유형화하려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주적 사고는 차별과 고정 관념을 낳는다.

정확성을 차치하고 트렌드로만 보면 MBTI 신드롬은 2021년 현재, 인간의 본능을 가장 충실히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고립의 시대,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질성이 강한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서로의 MBTI를 궁금해한다. 또한 내가 특정 범주로 규정되는 ‘정상적 인격’을 가졌음에 안도한다.

연령별 MBTI 온라인 검색 비율을 보면 20대(40%)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첫 출발을 하며 인맥을 쌓고 인정을 받아야 할 시기, 사회적 활동의 제한으로 인한 인간의 본능이 발동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박제한 오늘날 청춘들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는 때다.



김현진 DBR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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