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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이정은]한미일 균열을 내심 반기는 시선들

입력 2021-11-22 03:00업데이트 2021-11-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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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공동 기자회견 무산에 中매체들 관심
韓日관계, 더 큰 외교지형에서 접근해야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때가 있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예정돼 있던 한미일 차관 협의 후 공동 기자회견이 그중 하나였다. 4년 넘게 중단돼 있던 3국 간 차관 협의를 간신히 되살리고 정례화를 약속한 이후 미국의 심장부에서 판이 깔린 외교 무대. 세 명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으로 미국이 주요 동맹국들과의 단단한 결속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 공동 기자회견이 갑자기 무산된 것은 국무부 내에서도 적잖게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홀로 회견을 이끌어야 했던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양옆으로 긴 무대 중간에 그만 덩그러니 앉은 모습은 휑하고 어색했다.

외교적 돌발 상황에 해외 언론들이 보인 관심은 예상보다 컸다. 한국뿐 아니라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부터 유럽과 중동 매체까지 관련 기사를 내놨다. 한 매체는 ‘일본이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보도했다가 국무부로부터 “미국의 단독 회견은 한미일 3국이 사전에 미리 합의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수정 요청을 받기도 했단다. 이런 법석은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돼 온 동북아의 다자 협의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그만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임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국무부는 특히 중국 매체를 비롯한 중국의 반응을 눈여겨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매체들이 잇달아 이를 보도하며 일부 ‘고소하다’는 식으로 논평하는 것을 당국자들은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측 인사들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로 충돌할 때마다 “이런 균열을 제일 좋아할 나라는 북한과 중국”이라고 지적해 왔다.

한미일의 3각 협의체는 사실 우리에게도 중요하고 필요한 외교안보 공조의 틀이다. 한국은 쿼드(Quad)나 오커스(AUKUS), 파이브아이스(Five Eyes) 같은 역내 다자 협의체 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잘못하다간 홀로 외딴섬이 될 판이다. 미중 간의 치열한 패권경쟁 과정에서 역내 합종연횡 움직임이 더 강도 높고 더 속도감 있게 벌어지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한미일’ 구도가 삐거덕거릴 때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한 발 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머리를 맞대는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여기에 중국까지 덧붙여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의 핵능력 증강과 대만을 향한 무력시위, 사이버 공격, 첨단기술 경쟁은 이에 맞서는 미국의 동맹 규합 시도를 더 강화시키고 있다. 한미일 협력의 비중과 역할과 기대치가 모두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기자회견 무산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워싱턴에는 그 빌미로 작용한 한국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이 내년 대선을 앞둔 일각의 정치적 의도와 연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이번 일은 극도로 잘 조율됐거나 극도로 어설프게 조율됐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일 감정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를 고려한 것이라면 효과를 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외교적으로 미숙했다는 지적이었다. 쓸데없이 억울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일 관계의 개선 시도는 절실하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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