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흙수저 카투사’의 분투기… ‘군대 신드롬’ 다시 한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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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원 감독 졸업작 ‘가치캅시다’
4월 휴스턴영화제 은상 받기도

28일 개봉하는 영화 ‘가치캅시다’에서 미군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추혜진 병장(김기현).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28일 개봉하는 영화 ‘가치캅시다’에서 미군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추혜진 병장(김기현). 스튜디오보난자 제공
“나는 고졸에 거지라서 미군밖에 답이 없습니다. 헬프 미.”

최고참 병장이 윗옷을 벗은 채 외친다. 맨몸 상체에도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이를 낄낄대며 지켜보는 건 후임 병사들. 병장은 울음을 삼키며 같은 말을 반복하다 고개를 숙인다. 영화 ‘가치캅시다’의 한 장면이다.

영화 주인공은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복무 중인 추혜진 병장(김기현). 카투사엔 명문대생, 고위급 자제가 많지만 추 병장은 고졸에 흙수저다. 계획 없이 사업에 손댔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부모는 그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취급한다. 휴가나 외박을 나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닦달하기 일쑤. 부대에서도 든든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후임들은 별 볼일 없는 최고참을 무시하고 조롱한다. 가진 것 없는 추 병장은 후임에게 굽신거려야 한다. 공고해야 할 군대 내 계급마저 사회적 계급에 따라 역전된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 병장이 생각한 방법은 하나다. 미군이 되는 것. 영화 제목 ‘가치캅시다’는 주한미군이 한미동맹을 강조할 때 주로 쓰는 구호인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를 미국인 발음으로 표기한 것. 온갖 차별의 벽에 막힌 한국을 떠나 미국인이 되려는 그의 의지를 담았다.

그는 주한미군 고위급 인사의 추천을 받아 미군이 되려 애쓰지만 후임들의 거짓 신고로 미군 군용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다. 누명을 벗어야 미군이 될 수 있는 그는 탄원서 서명을 받으려고 후임을 등에 태우고 말 흉내를 내는 등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4월 열린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학생 장편 부문 은상을 받았다. 카투사에서 2012∼2014년 고졸로 복무한 조승원 감독(30)의 장편 데뷔작이자 뒤늦게 한국영상대에 간 그의 졸업 작품이다.

‘미군이 되는 것’이라는 해결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돈 많은 부모도, 학벌도 없는 청년에게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저학력 흙수저 청년이 겪는 좌절과 비루함을 담담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 이어 ‘군대 수작’이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20대 청년과 군대 이야기를 다루지만 대다수가 한 번씩은 겪어본 차별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아우르고 있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조 감독은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군대 이야기 자체보다 2030세대가 각자의 배경에 따라 상대에게 가지는 혐오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추 병장은 갖은 굴욕을 버텨내고 미군이 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28일 개봉.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가치캅시다#흙수저 카투사 분투기#군대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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