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세계가 주목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과징금 높여야 실효성”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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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구글 갑질 방지법’ 시행
구글 등 앱 구매때 수수료 30%… 업계 반발에 국회가 팔걷어
美 상원-업계 “한국 뒤따라야”
국내 수수료만 연간 兆단위… ‘3억이하 벌금’ 처벌 너무 약해

지민구 산업1부 기자
지민구 산업1부 기자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규제를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시작합니다. (구글, 애플 등의) 독점적 횡포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공조는 한국에서부터 진행 중입니다.”

지난달 31일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의 제안 설명 후 본회의에 상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재적 의원 188명 중 180표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구글, 애플 등 대형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장터) 사업자가 모바일 서비스, 콘텐츠 개발사에 특정한 결제 방식을 강제할 수 없도록 한 규제 법안이 세계 최초로 통과된 것이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와 정치권에선 이 법의 핵심 내용을 반영해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또는 ‘구글 갑질 방지법’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법안 통과는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사실을 주요 기사와 속보로 다뤘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등 주요국의 빅테크 규제에 미칠 영향과 효과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 이달 14일부터 시행됐지만, 아직까지 구글과 애플 등 대형 앱 장터 사업자들은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않는 방식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IT 업계에선 당장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장기적으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 빅테크가 독점한 앱 장터 시장 지배력에 균열을 만들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 “인앱결제 강제 금지로 연 2조3000억 원 비용 절감”

인앱결제는 유료 콘텐츠를 구매할 때 앱 장터 사업자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통해서만 결제해야 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구글, 애플 등 앱 장터 사업자는 모바일 게임 앱 등에 결제 방식을 강제하면서 최대 30%의 수수료를 떼 왔다. 100원어치를 팔면 30원을 앱 장터 사업자에게 내야 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게임업계는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이용자 2억5000만 명을 보유한 1인칭 총쏘기게임(FPS) 포트나이트의 개발사 미국 에픽게임스가 대표적이다. 구글과 애플은 지난해 8월 에픽게임스가 포트나이트에 자체 결제 시스템을 탑재하자 게임을 앱 장터에서 내려받을 수 없도록 삭제했다. 당시 에픽게임스는 게임 아이템을 앱 장터에서 이용하면 9.99달러(약 1만1770원)이지만 자체 시스템에서 결제하면 7.99달러라고 안내했다가 퇴출됐고, 이에 반발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연간 조(兆) 단위 수수료를 앱 장터 사업자에게 내면서도 시장지배력을 가진 구글과 애플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한국모바일산업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구글과 애플의 국내 앱 장터 시장 점유율은 87.8%였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구글이었다. 구글은 모바일 게임에만 적용하던 인앱결제 의무화와 수수료 30% 부과 조치를 애플처럼 웹툰, 영상, 음원 등 모든 콘텐츠 앱 서비스로 확대하겠다고 지난해 9월 발표했다. 이에 그동안 침묵했던 창작자, IT 업체, 게임 기업 등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중소 앱 사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 “빅테크 규제, 한국 뒤따라야”… 미국 유럽도 동조


논란이 거세지자 국회에선 여야 의원이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 7건을 발의했다. 구글, 애플 등은 강하게 반대했다. 헌법이 보장한 ‘영업의 자유’를 법으로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법이 개정되면 한미 양국 간 통상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구글, 애플 등 빅테크를 겨냥해 규제의 칼을 꺼내들면서 반대 논리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빅테크 저격수로 불린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가 6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으로 취임한 데 이어 8월 상·하원에선 구글과 애플을 겨냥해 인앱결제 강제 금지 조항을 담은 ‘열린 앱 장터 법안(The Open App Markets Act)’이 발의됐다. 미 정부와 입법부가 직접 자국 기업에 대한 규제에 나선 만큼 해외에서도 이를 반대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자 미 상원 의원들이 가장 먼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상원에서 열린 앱 장터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리처드 블루먼솔 의원은 “미국도 (관련법을) 조속히 통과시키는 등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렸다. 함께 법안을 제출한 공화당 마샤 블랙번 의원도 트위터에 “이제는 미국이 (한국을) 뒤따라야 할 때”라고 썼다. 일명 ‘반(反)빅테크 연대’의 선봉장으로 나섰던 에픽게임스의 팀 스위니 대표는 “나는 한국인이다(I am Korean)!”이라는 트위터 게시글을 띄워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앱 개발 및 콘텐츠 업계는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앱 개발사들이 자체 결제 시스템 등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 수수료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IT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특정 결제 수단을 강제하면 연간 앱 개발사의 매출 2조3000억 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추산치를 담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달리 말해 외부 결제를 허용할 경우 그만큼 개발자와 창작자들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처벌 규정 미흡” 등 법안 실효성 지적도 나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가 빅테크 독점 규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관련 규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디지털시장법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앱결제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독점 폐해를 막는 플랫폼 규제 논의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구글에 207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앱 장터 경쟁 제한, 광고시장 관련 문제 등 추가 제재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구글, 애플 등 앱 장터 사업자가 인앱결제 강제 조치를 계속해도 형사처벌은 ‘3억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IT 기업 관계자는 “앱 장터 사업자가 게임, 콘텐츠 앱 사업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제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식 등으로 규제를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과징금 부과(행정처분) 상한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플랫폼의 혁신은 살리면서도 독점의 횡포를 막고 규제의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 인앱결제(In-App Purchase) ::
모바일 게임, 웹툰 등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서 유료 콘텐츠를 구매할 때 구글 애플 등 앱 마켓 사업자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통해서만 결제하도록 하는 방식. 구글 애플 등 사업자는 직접 수수료율을 정하고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지민구 산업1부 기자 warum@donga.com


#인앱결제#강제 금지법#실효성#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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