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금, 파주서 일하는데 주소지 부산서 쓰라니… 지역제한 야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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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대상 제한에 허탈한 시민들

부산이 고향인 김준호 씨(24)는 3개월 전부터 경기 파주시에 있는 설비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5차 재난지원금(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이라는 안내 문자를 받고 7일 신청을 마쳤다.

하지만 김 씨는 지원금 25만 원을 받아도 부산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스러웠다. 주민등록 주소지를 미리 옮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지원금은 주민등록상 주소지의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김 씨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공장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경제 활동 대부분을 파주에서 하는 김 씨가 지원금을 쓰려면 일부러 부산에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회사에서 먼 거리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 터라 추석 연휴에도 파주에 머물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김 씨는 “지원금을 받아 추석 때 배달음식이라도 시켜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허탈해했다.

○ 주소지 다르면 ‘그림의 떡’

김 씨처럼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른 수급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실제 사는 집과 먼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 등이 대표적이다.


원래 서울 서대문구가 집이지만 전북 정읍에서 대체 복무를 하고 있는 박모 씨(23)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씨는 “누가 25만 원을 쓰자고 주소지 변경까지 하겠느냐. 코로나19로 휴가를 언제 나갈지 몰라 지원금을 포기할까 한다”고 푸념했다.

연말까지 사용되지 않은 지원금은 소멸된다. 다만 지원금 산정 기준일인 6월 30일 이후 이사 등을 이유로 거주지가 달라지면 사용 지역을 변경할 수 있다.


경북 청송의 본가를 떠나 서울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대학생 조모 씨(22)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 지원금을 받으면 숨통이 좀 트일까 했는데 막막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로 다른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을 받는 숙박업자들도 사용지역 제한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경기 가평의 펜션 직원 원모 씨(31)는 “하루 평균 2, 3통씩 ‘지원금으로 숙박비를 결제할 수 있냐’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그때마다 사용지역 제한을 안내해야 해 속이 타들어간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민지원금 지급 목적에 지역경제 활성화가 포함된 만큼 제한을 뒀다”며 “실거주지가 다른 사례 등은 안타깝지만 모든 사정을 일일이 고려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카드·상품권으로만 지급…“효과 없을 것”

국민지원금이 카드나 상품권 등으로만 지급돼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도 있다. 이재인 코인노래방협회 이사는 “코인노래방은 이름 그대로 현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 5월 기준 카드 단말기를 설치한 코인노래방 업체가 전체 10%도 안 돼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지원금 지급 취지가 코로나19 피해 극복에 맞춰진 만큼 사용지역 제한 등으로 생긴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에 따르는 행정비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역 제한 해제와 현금 지급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금을 쓰지 못하는 매장 대신 편의점에서 무선이어폰 등 전자기기를 구매하는 사례도 나왔다. 지원금 사용이 제한된 대형 전자제품 직영매장이 아니라 웨어러블 기기를 취급하는 편의점을 찾아 전자기기를 사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웨어러블 기기를 취급하는 편의점 목록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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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연 기자 ycy@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송진호 인턴기자 중앙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재난금#지역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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