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생명줄 ‘아편’, 통치 자금으로 쓰인다

  • 주간동아
  • 입력 2021년 8월 28일 1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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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수출해 20년간 미군과 게릴라전… 해외 원조 끊기면 더욱 적극 판매에 나설 것

무장한 탈레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하고 있다. [Skynews]
무장한 탈레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하고 있다. [Skynews]
칸다하르는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제2의 도시’로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된 곳이다. 당시 이슬람 학교 마드라사에서 공부하던 학생 2만5000여 명이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이슬람 무장 정치단체 탈레반을 만들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최대 민족 파슈툰족 말로 ‘학생들’, 물라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아프간 남부 중심지인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고향이자 정신적 거점이라고 볼 수 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을 통치하다 9·11 테러를 자행한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비호했다는 이유로 미군의 공격을 받아 축출됐다. 이후 탈레반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미군과 20년간 게릴라전을 벌여왔다.

칸다하르는 또 고대부터 외세 침략을 받아온 파슈툰족이 1748년 두라니(Durrani)라는 왕국을 처음으로 세운 곳이다. 당시 파슈툰족은 부족장 아흐마드 샤를 국왕으로 선출하고 칸다하르를 수도로 정했다. 칸다하르에 도시를 가장 먼저 건설한 사람은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기원전 323)이다. 칸다하르는 파슈툰족 말로 ‘알렉산드로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전 세계 아편 생산량 84% 아프간에서 재배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이 양귀비밭에서 아편 원료를 수확하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이 양귀비밭에서 아편 원료를 수확하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칸다하르는 또 아편 집산지로 유명하다. 아프간 농민들은 과거부터 칸다하르 외곽 고원지대에서 양귀비 농사를 해왔다. 양귀비 잎은 복통을 치료하는 진통제로, 줄기는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하고, 씨앗은 빵에 넣거나 기름을 만들었다. 봄이면 아프간 남부지역은 붉은색 양귀비꽃들이 척박한 땅을 뒤덮을 정도다. 그런데 이 양귀비가 바로 아편 원료다. 양귀비 열매에서 나오는 보라색 유액(乳液)을 말리면 아편이 되고 여기에 화약약품을 첨가하면 헤로인이 된다.

미국과 탈레반의 전쟁이 장기화하자,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아프간 농민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양귀비를 재배하고 채취한 아편을 팔아 생활했다. 아프간은 전체 인구 3200여 만 명 중 90%가 하루 2달러(약 2333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아프간은 국제통화기금(IMF)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92달러(약 69만 원)다. 마약조직은 농민들에게 양귀비 씨앗을 나눠주면서 유혹의 손길을 뻗었다. 탈레반도 농민들에게 양귀비를 재배하게 하거나 재배 보호 명목으로 돈을 상납받고, 마약조직과 협력하면서 아편 및 헤로인을 밀수출해왔다. 심지어 전사들을 동원해 직접 양귀비를 재배해 아편과 헤로인을 생산하기도 했다.

양귀비 재배 면적은 그동안 엄청나게 늘어났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7만4000㏊에서 2010년 12만3000㏊, 2020년 22만4000㏊로 확대됐다. 축구장 33만 개와 맞먹는 면적으로, 전체 국토의 34%를 차지한다. 이렇다 보니 2020년 한 해 전 세계 아편 생산량의 84%가 아프간에서 나왔다. 아프간에서 생산된 아편과 헤로인은 이른바 ‘발칸 루트’를 통해 유럽으로 밀수출된다. UNODC에 따르면 아프간 마약은 이란으로 넘어간 후 터키와 발칸 반도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흘러간다. 또 파키스탄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도 대거 밀수출된다. 이 때문에 아프간과 이란, 파키스탄은 21세기판 ‘황금의 초승달(Golden Crescent)’ 지역으로 불린다. 20세기 후반 마약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이던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 ‘황금의 삼각지(Golden Triangle)’로 불리던 지역과 더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탈레반은 그동안 마약 밀매를 통해 엄청난 자금을 벌어왔다. 실제로 미국의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은 보고서에서 탈레반은 연간 수입의 최대 60%를 불법 마약 거래를 통해 얻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재 아프간에서 아편 생산량은 1만여t을 넘고 가치는 40억~50억 달러(약 4조6600억~5조8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프간 경제가 대부분 현금 기반이라 추적이 불가능한 돈이 많기 때문이다.

양귀비 재배 막은 미국에 반감 보인 아프간 농민들
무장한 탈레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하고 있다. [Skynews]
무장한 탈레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하고 있다. [Skynews]
탈레반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미군과 전쟁을 수행하는 데 사용했다. 무기와 탄약, 식량 구입은 물론이고, 전사들의 월급과 그 가족의 생활비도 지급해왔다. 또 신규 전사들을 모집해 훈련하는 비용으로도 지출했다. 탈레반 전사의 월급이 정부군 병사보다 3~4배 많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군은 서류상으로 30만여 명이지만 이는 군 간부들이 급여를 가로채려고 허위 기재한 ‘유령 병사’들이 포함된 수치고, 실제 병력은 6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정부군 병사들은 중간에서 미국이 지원한 돈을 빼돌리는 간부들 때문에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데다, 탄약 등 물자와 식량까지 부족했다. 탈레반이 속전속결로 아프간을 장악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탈레반의 돈줄을 막기 위해 아편 근절 프로그램에 나섰다 아프간 농민들의 민심까지 잃었다. 미국은 2002∼2017년 86억 달러(약 10조300억 원)를 투입해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밀이나 과일, 값비싼 향신료인 사프란 등을 심으라고 권유했지만 실패했다. 아프간 농민들은 “양귀비 재배가 불법인 줄 알지만 내 자식들에게 공기밖에는 먹일 게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양귀비는 수확 기간이 5개월로 한 해 두 번 수확할 수 있고 다른 작물보다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다. 아프간 농민들은 양귀비를 재배하지 말라는 미국에 반감까지 보였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아편 등 마약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탈레반의 의도는 국제사회로부터 자신들이 세울 국가가 합법적이며 정상적이라는 점을 인정받으려는 속셈이다. 또 국제사회로부터 상당한 원조도 기대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지금까지 매년 33억 달러(약 3조8500억 원) 자금을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았다. 하지만 탈레반은 마약 수출 중단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통치 자금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 중앙은행은 해외에 90억 달러(약 10조5120억 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70억 달러(약 8조1760억 원)를 채권과 금 형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20억 달러(약 2조3360억 원)를 국제결제은행(BIS)과 세계은행(WB) 계좌에 예치하고 있다. 아프간 중앙은행이 국내에 보유한 외화는 없으며, 해외로 망명한 아즈말 아흐마디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카불이 함락되기 전까지 1장의 달러도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았다. 탈레반은 보유 외환의 0.1∼0.2%에만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정부가 자국에 예치한 외화 등 각종 자산을 모두 동결했다. 또한 탈레반에 대한 제재 조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GDP의 42.9%를 해외 원조에 의존해온 아프간
IMF도 아프간에 특별인출권(SDR) 배정을 보류했다. SDR는 IMF 회원국들이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달러, 유로, 엔, 파운드, 위안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한 권리를 말한다. IMF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빈국들을 지원하고자 6500억 달러(약 758조950억 원)의 SDR를 각국에 배정했는데, 아프간에 지급될 4억5500만 달러(약 5306억6650만 원)의 인출권을 유보했다. IMF는 성명에서 “탈레반을 인정할지 국제사회에 확실성이 없다”며 “탈레반은 SDR를 비롯한 다른 IMF 자원에 접근할 수 없다”고 밝혔다. IMF의 이런 결정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독일 등 유럽연합(EU)과 미국을 비롯해 서방 국가들도 아프간 원조를 중단했다. 아프간은 그동안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해외 원조에 의존해왔는데, 외환 보유액의 75%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 자금이었으며 지난해 기준 GDP의 42.9%에 달한다. 독일 정부는 “탈레반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을 도입할 경우 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는 여성 인권 보호 등을 위해 탈레반을 압박하려는 의도이지만, 해외 원조 등이 끊기면 아프간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결국 탈레반은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 탈레반이 희토류 등 1조~3조 달러(약 1166조~3500조 원)로 추정되는 광물들을 개발해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으나, 채굴 자금과 기술력이 없을 뿐 아니라 수출하려면 각종 제재가 해제돼야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탈레반은 ‘현금장사’인 아편 생산과 수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분명하다. 탈레반도 2000년 양귀비 재배 금지에 나섰다 민심을 잃은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아편이 탈레반의 ‘생명줄’인 셈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4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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