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정치’ 옛말…대선주자들 SNS서 요리 선보이고 예능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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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대선후보들의 각양각색 비대면 선거전략
친근한 이미지 홍보형… ‘짧고 굵게’ 메시지 전달형
MZ세대 콘텐츠 공략형… SNS ‘팬덤정치’ 우려 목소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선거철마다 유권자들의 손을 맞잡던 ‘악수 정치’가 사라졌다. 선거운동 막판 손과 손목의 통증으로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유세에 나섰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는 옛이야기가 됐다. 전례 없는 언택트(비대면)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악수를 대체할 대선 주자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치가 진화하고 있다. 반려견 사진을 앞세운 감성 소통부터 최신 기술을 입힌 메타버스 홍보까지 새로운 플랫폼으로 다변화하고 있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온라인 선거 전략을 살펴봤다.

○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탈피 시도

온라인 선거운동이 표심을 사로잡는 핵심 수단이 된 것은 2002년 16대 대선부터다.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이른바 ‘노풍’의 주역이 됐다. 그때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동호회 활동이 주를 이뤘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또 다른 ‘돌풍’을 일으키기 위해 SNS 정치에 공을 들이는 대선 후보들의 활동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영상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후발 주자인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기존의 법조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운다.


윤 전 총장은 SNS를 통해 딱딱해 보이는 평소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페이스북 개설 당시 자기소개란에 ‘애처가’ ‘국민마당쇠’ ‘토리아빠 나비집사’ ‘엉덩이탐정 닮았다고 함’ 등을 적었다. 일각에서 지적한 검사 특유의 ‘칼잡이’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 측의 SNS 계정 수도 크게 늘었다. 페이스북 3개, 인스타그램 2개, 유튜브 1개 등 총 6개의 SNS 계정 가운데 생활 밀착형 콘텐츠는 인스타그램에 집중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편한 티셔츠를 입고 요리하는 모습, 반려견을 안고 있는 모습 등이 공개됐다. 윤 전 총장이 유일하게 팔로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전용으로 올리는 ‘토리스타그램’이다. 윤 전 총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부인 김건희 씨가 직접 촬영을 도와주며 숨은 내조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전 원장은 가족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최 전 원장 자녀들이 SNS 계정 관리를 도와주고 있는데, 최 전 원장은 미용실에서 머리하는 사진을 공개한 첫 게시물에서 “아들에게 (SNS 하는 방법을) 속성으로 배웠다”고 설명했다. 최 전 원장의 큰딸 최지원 씨(37)는 최 전 원장의 일상을 올리는 인스타그램을 직접 관리하며 소탈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최 전 원장과 부인 이소연 씨의 여행 사진과 19년 된 반려묘 사진 등이 게재됐다. ‘민생 투어’를 시작한 5일에는 최 전 원장이 과거 경남 창원 진해, 대구, 경북 경주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방문지와의 연고를 강조했다. 큰딸 최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미담 제보도 들어오고 있다”며 “인위적인 이미지를 만든다기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 아버지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SNS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인스타그램에 ‘숙희 씨의 일기장’ 시리즈를 올리며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엄근진’ 이미지가 강했던 이 전 대표는 부인 김숙희 씨를 만난 순간부터 결혼 뒤 셋방을 전전하던 사연 등을 웹툰 형식으로 전한다. 이 전 대표는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즐겨 보는 유튜브 예능 채널에도 출연하며 이색 홍보전에 나섰다. 방송인 강유미 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선거철이면 으레 전통시장을 찾아 사진을 찍는 정치인의 모습 대신 음식을 먹는 소리를 들려주는 ‘먹방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음향)’을 선보인 것. 방송인 홍진경 씨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선 일일 수학 강사로 변신했다.

○ 핵심만 짧고 굵게, ‘쇼트폼’ 콘텐츠


이미 19대 대선에서 온라인 선거 경험을 쌓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은 ‘짧고 굵은’ 쇼트폼(짧은 형식) 콘텐츠를 통해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노련미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 중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는 SNS 활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지사가 다른 후보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직접 소통이다. 이 지사는 경기 성남시장 시절 적극적인 SNS 활용과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으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손가락 혁명군(손가혁)’ 등과 같은 온라인 기반의 열성 지지자 모임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 지사 페이스북에는 여야 정치인들을 겨냥한 메시지도 있지만, 공장 노동자로 일할 당시 기억이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 지역 행보 중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다. 이 지사 캠프 관계자는 “이 지사는 이동 중에도 수시로 SNS에 직접 메시지를 쓴다”며 “이번에도 자신 있는 방법으로 지지층과의 소통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직접 페이스북에 ‘jp의 희망편지’ 연재를 시작했다. 여기엔 국방, 부동산, 복지 등 사회 전반에 대한 홍 의원의 정책 비전이 담겨 있다. 800자를 넘지 않는 짧은 글이다. 연재글은 구독자 43만 명에 이르는 ‘홍카콜라TV’에도 2분가량의 영상으로 공개된다. 명확한 정책 비전을 통해 ‘준비된’ 대선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것. 지난 대선에서 선거 전날까지 하루에 19개의 게시물을 올리며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 아들의 취업 특혜 논란을 저격하는 등 네거티브 이슈에 주력하던 모습과는 대비된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홍 의원이 이번 대선은 정책 비전, 공약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 측근 인사는 “국난 상황인 만큼 지난 대선보다 차분하게 우리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책과 비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홍 의원에게 당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매일매일 터져 나오는 정치, 정책 현안에 즉각 목소리를 내며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유 전 의원 캠프는 이번 대선에서는 다른 어떤 캠페인보다 국민들에게 유 전 의원의 공약이 무엇인지, 다른 후보에 비해 어떤 점이 우월한지 전달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유 전 의원은 주로 논평 형식의 정제된 글을 게시한다. 경제 전문가의 면모를 살려 부동산, 전 국민 재난지원금, 기본소득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적극 개진한다. 유 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지사의 ‘기본 시리즈’(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를 비판하며 “이 지사의 기본대출을 5000만 명 국민 중 절반이 이용하면 250조 원”이라며 “이 지사는 ‘판타지 소설’을 쓰기 전에 경제의 기본 상식부터 깨닫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도 SNS를 통한 공약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박 의원은 최근 30초 이내의 짧은 인터뷰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씽터뷰’ 콘텐츠를 선보였다. 비정규직 청년을 위한 ‘청년 안식년제’ 공약 발표 배경부터 공매도 폐지 논란, 기후 위기 등에 대한 생각을 보좌진이 물으면 30초 안에 답변하는 식이다. 박 의원 캠프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길이가 긴 영상은 아무래도 주목도가 떨어진다. 최대한 짧게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많은 유권자에게 공약을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문(친문재인) 열성 지지층의 지원을 등에 업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22만2000명을 넘겨 여권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많다. 추 전 장관은 지역 행보 영상이나 방송 인터뷰 등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며 지지층과 소통하고 있다.

○ ‘Z세대’ 겨냥 메타버스·B급 감성


최근 떠오르고 있는 메타버스 기술도 언택트 홍보에 활용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말한다. 이곳에서 이용자끼리 문자, 음성, 이모티콘 등으로 친목도 다질 수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활용해 ‘청년 정세균, 청세균’이란 콘텐츠를 선보였다. 젊은 시절 정 전 총리의 모습을 한 아바타가 등장해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연출한 것. 캠프 관계자는 “정 전 총리가 너무 진지해 보인다는 의견이 있어 젊은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한 것”이라며 “지지층에 청년들을 유입시키고 쌍방향 소통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제페토를 이용해 구현한 ‘가상 독도’에서 일본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젊은층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홍보 영상 자막에 ‘B급 감성’을 담아냈다. 유튜브 채널인 ‘원희룡TV’에 공개된 대선 출마 선언 비하인드 영상에서 ‘내가 메이크업을 하는 것은 잘생김을 감추기 위함이다’ ‘나는 절대로 카메라는 의식하지 않는다’ 등의 자막을 달아 웃음을 유발하는 식이다. 지난달엔 ‘부캐’(제2의 캐릭터)인 ‘희드래곤 H-Dragon’ 유튜브 계정을 따로 개설했다. 원 지사는 부캐 채널 영상에서 정치사회부 기자 ‘원희봉’으로 변신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보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일각에선 팬덤을 키워내는 SNS 홍보 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정책보다 외모나 행적 등을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파고드는 행위)하고 열정적인 지지 의사를 표현하는 ‘팬덤 정치’가 국민들의 후보 실체 파악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선거운동은 후보자 및 해당 캠프 인사들과 유권자 간 접촉면이 넓어 평가 영역도 많아지는 반면 SNS를 활용한 온라인 선거운동은 유권자에게 가공된 이미지만 전달된다는 한계가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를 통한 소통이 열성 지지층을 만드는 효과가 크고 당내 경선에선 이 같은 열성 지지층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후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에 의지할 경우 확증편향에 빠지고, 결국엔 일반 대중과 멀어지게 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캠프 수행원들에 의해 대리 운영되는 소통 방식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SNS로 보여지는 것에 비해 실제 대선 후보들이 가진 의사소통 역량이나 공감도가 높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소통 매체는 진화됐지만 그 매체를 활용하고 있는 후보자들은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조아라 기자 likeit@donga.com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악수 정치#대선주자#sns#예능 도전#비대면 선거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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