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소재는 ‘변신의 귀재’ 구부린 각도따라 성질 바뀌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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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린, 구부릴 때마다 특성 달라져… 다용도 적외선 검출 센서로 활용
그래핀 소재, 겹치는 각도에 따라 초전도 현상 나타나는 사실 발견
양자컴퓨터 활용 가능할 것 기대
잇따른 2차원 소재 신기술 개발… 한국 연구원들 최전선에서 활약

2차원 소재인 그래핀을 3중으로 겹치면 높은 자기장에서도 초전도성을 유지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MIT 제공
2차원 소재인 그래핀을 3중으로 겹치면 높은 자기장에서도 초전도성을 유지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MIT 제공
적외선 검출 센서는 열화상 카메라부터 가스 검출 센서, 의료용 영상기기까지 군사와 산업,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지만 적외선이 아닌 다른 광을 검출하는 센서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미국의 첨단 무기 기술을 개발하는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새로운 야간투시경용 소재로 2차원 소재에 주목했다. 알리 자베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부 교수와 김형진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DARPA의 지원을 통해 2차원 반도체인 흑린을 구부리는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적외선 파장대를 검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이용한 센서를 개발해 1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2차원 소재는 단일 원자층에 원자 배열이 2차원으로 이뤄진 소재다. 탄소 원자가 육각 벌집 모양으로 나열된 소재인 그래핀이 대표적이다. 인 원자가 결합한 흑린과 같은 2차원 반도체, 2차원 부도체 등 다양한 소재도 발견됐다. 원자 배열이 2차원으로 이어진 구조라 찢어지거나 깨지는 결함이 생겨도 소재 특성을 잃지 않는다. 열을 가하거나 구부리는 변형만으로도 소재 특성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반도체 소재를 구부리면 반도체 특성을 결정짓는 에너지 대역인 ‘밴드갭’이 바뀐다. 연구팀은 2차원 소재로 만든 반도체를 구부릴 경우 밴드갭이 바뀌는 효과가 극대화되는 데 주목했다. 밴드갭이 바뀌면 소재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대역이 바뀌어 흡수하는 파장도 바뀐다. 연구팀은 흑린을 기판 위에 놓고 구부리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1% 구부릴 때마다 검출할 수 있는 파장 대역이 1.6μm(마이크로미터·μm는 100만분의 1m)씩 바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적용한 하나의 센서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메탄가스를 모두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구부리는 횟수 제한 없이 감지 대역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센서는 최초”라며 “적외선 센서를 사용하려면 냉각이 필요한데 흑린은 상온에서도 적외선 센서로 사용할 수 있어 군사용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구부리는 2차원 반도체로 에너지 손실을 없앤 발광다이오드(LED)도 개발해 지난달 2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LED는 반도체에서 전자(음전하)와 정공(양전하)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엑시톤’이 서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빛을 활용한다. 그러나 광원으로 쓸 정도의 높은 에너지를 가하면 엑시톤이 너무 많아지고 서로 결합하면서 빛 대신 열을 낸다. 통상 가해진 에너지의 15%만 빛으로 전환하고 85%는 열로 바뀐다.

연구팀은 2차원 반도체 소재를 0.5%만 구부려 LED로 활용할 경우 엑시톤이 열을 내는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이 소재를 응용하면 실생활에서도 100% 효율을 내는 LED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원 소재의 전통 강자였던 그래핀도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그래핀 두 장의 각도를 1.1도로 빗겨 겹치면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마법 각도 그래핀’이 2018년 발견되면서다. 차오위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 및 계산과학부 박사후연구원이 관련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박정민 MIT 박사과정 연구원은 차오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마법 각도 그래핀을 구현하는 새로운 마법 각도를 찾아내 지난달 21일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래핀 세 장을 겹치고 가운데 그래핀 층을 1.57도 각도로 돌렸더니 강한 자기장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강한 자기장이 필요한 양자컴퓨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연구원은 이중층 그래핀과 삼중층 그래핀 연구로만 올해 네이처 발표 논문 4편에 1저자로 참여했다. 박 연구원은 “2차원 소재는 실험 중에도 조절이 가능해 다양한 성능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2차원 소재#밴드갭#적외선 검출 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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