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린, 구부릴 때마다 특성 달라져… 다용도 적외선 검출 센서로 활용
그래핀 소재, 겹치는 각도에 따라 초전도 현상 나타나는 사실 발견
양자컴퓨터 활용 가능할 것 기대
잇따른 2차원 소재 신기술 개발… 한국 연구원들 최전선에서 활약
적외선 검출 센서는 열화상 카메라부터 가스 검출 센서, 의료용 영상기기까지 군사와 산업,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지만 적외선이 아닌 다른 광을 검출하는 센서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미국의 첨단 무기 기술을 개발하는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새로운 야간투시경용 소재로 2차원 소재에 주목했다. 알리 자베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부 교수와 김형진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DARPA의 지원을 통해 2차원 반도체인 흑린을 구부리는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적외선 파장대를 검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이용한 센서를 개발해 1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2차원 소재는 단일 원자층에 원자 배열이 2차원으로 이뤄진 소재다. 탄소 원자가 육각 벌집 모양으로 나열된 소재인 그래핀이 대표적이다. 인 원자가 결합한 흑린과 같은 2차원 반도체, 2차원 부도체 등 다양한 소재도 발견됐다. 원자 배열이 2차원으로 이어진 구조라 찢어지거나 깨지는 결함이 생겨도 소재 특성을 잃지 않는다. 열을 가하거나 구부리는 변형만으로도 소재 특성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반도체 소재를 구부리면 반도체 특성을 결정짓는 에너지 대역인 ‘밴드갭’이 바뀐다. 연구팀은 2차원 소재로 만든 반도체를 구부릴 경우 밴드갭이 바뀌는 효과가 극대화되는 데 주목했다. 밴드갭이 바뀌면 소재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대역이 바뀌어 흡수하는 파장도 바뀐다. 연구팀은 흑린을 기판 위에 놓고 구부리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1% 구부릴 때마다 검출할 수 있는 파장 대역이 1.6μm(마이크로미터·μm는 100만분의 1m)씩 바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적용한 하나의 센서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메탄가스를 모두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구부리는 횟수 제한 없이 감지 대역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센서는 최초”라며 “적외선 센서를 사용하려면 냉각이 필요한데 흑린은 상온에서도 적외선 센서로 사용할 수 있어 군사용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구부리는 2차원 반도체로 에너지 손실을 없앤 발광다이오드(LED)도 개발해 지난달 2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LED는 반도체에서 전자(음전하)와 정공(양전하)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엑시톤’이 서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빛을 활용한다. 그러나 광원으로 쓸 정도의 높은 에너지를 가하면 엑시톤이 너무 많아지고 서로 결합하면서 빛 대신 열을 낸다. 통상 가해진 에너지의 15%만 빛으로 전환하고 85%는 열로 바뀐다.
연구팀은 2차원 반도체 소재를 0.5%만 구부려 LED로 활용할 경우 엑시톤이 열을 내는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이 소재를 응용하면 실생활에서도 100% 효율을 내는 LED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원 소재의 전통 강자였던 그래핀도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그래핀 두 장의 각도를 1.1도로 빗겨 겹치면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마법 각도 그래핀’이 2018년 발견되면서다. 차오위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 및 계산과학부 박사후연구원이 관련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박정민 MIT 박사과정 연구원은 차오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마법 각도 그래핀을 구현하는 새로운 마법 각도를 찾아내 지난달 21일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래핀 세 장을 겹치고 가운데 그래핀 층을 1.57도 각도로 돌렸더니 강한 자기장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강한 자기장이 필요한 양자컴퓨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연구원은 이중층 그래핀과 삼중층 그래핀 연구로만 올해 네이처 발표 논문 4편에 1저자로 참여했다. 박 연구원은 “2차원 소재는 실험 중에도 조절이 가능해 다양한 성능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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