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원]“선함을 구걸하지 않는다” 성수동 소셜벤처들의 도전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입력 2021-07-29 03:00수정 2021-07-29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다. 골목마다 들어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은 과거 동네 공장이 가득했던 후락한 성수동의 이미지를 뒤바꿨다. 이곳 힙스터들의 성지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창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회혁신가들의 도전이다. 수익을 낸다는 측면에서는 일반 스타트업과 다를 게 없지만 사회적, 환경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업의 본질로 삼은 이른바 소셜벤처 창업이다.

소보로(소리를 보는 통로)는 성수동에 둥지를 튼 소셜벤처 중 하나다. 소보로는 대화 내용을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문자로 띄워주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청각장애 학생들이 언제든 소리를 ‘읽을 수’ 있게 하자는 착한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소보로는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 비즈니스 회의가 잦은 기업들이 더 자주 찾는 소프트웨어가 됐다.

이원(eone)은 ‘보는 시계’가 아니라 ‘만지는 시계’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시각장애인도 세련된 디자인의 시계를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시곗바늘을 손으로 만져 시간을 알 수 있는 이 신박한 디자인은 세계의 비장애인들까지 매료시켰다.

친환경 인공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디아만티스타는 환경 파괴와 일당 3000원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노동인권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다. 고온고압의 땅속 자연환경에서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구현했다. 천연 다이아몬드 회사에 근무하던 이 회사 대표는 1캐럿 다이아몬드 채굴에 65kg의 탄소 배출과 2.5t의 흙이 파헤쳐지는 환경 파괴를 목격하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주요기사
이 밖에도 성수동에는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패션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업체나 일회용품 퇴출에 앞장서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등 선한 기업 400여 개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실험 중이다. 도시, 환경, 건강, 안전 등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서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소셜벤처의 매력은 이들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라고 해서 선한 의도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착한 일을 한다고 소비자의 선택이나 온정적 소비를 강요하지 않는다. 돈을 벌려면 상품성을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자생력이 있어야 사회적으로 임팩트를 낼 수 있으며, 비로소 사회가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1세대 사회적 기업가, 시민운동가들처럼 선함에만 의존해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교훈을 터득한 것 같다.

소셜벤처는 아직 벤처업계의 마이너리티다. 하지만 소셜벤처에 공감하는 젊은 창업자와 인재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특히 성수동에는 직접 선수로 뛰는 소셜벤처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값싼 창업 공간을 제공하거나, 창업 컨설팅이나 기술을 지원해주는 ‘소셜벤처를 위한 소셜벤처’ 그리고 이들에 투자하는 소셜벤처 캐피털(VC)이 생태계를 이뤄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키워 가고 있다. 기존의 성장모델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제2, 제3의 성수동’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김창원 DBR 사업전략팀장 changkim@donga.com



#선함#구걸#소셜벤처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