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의 마지막 임무 “6·25 기억, 자료로 남겨라”

손효주 기자 입력 2021-07-22 03:00수정 2021-07-22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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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구술 영상 올해 녹화분,인터넷 오픈 아카이브에 11월 공개
노병들의 마지막 메시지 전달
“전우들 희생 더 많이 알리려 참여”… 전문가 “전쟁사 빈곳 메워줄 자료”
6·25전쟁 당시 카투사 1기로 참전한 류영봉 씨(89)가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자신이 겪은 전쟁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카메라 앞에서 구술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932년 경북 의성군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류영봉입니다.”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유엔실.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내년이면 아흔을 맞는 예비역 이등중사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카메라가 어색한지 다른 곳을 쳐다보다 몇 차례 녹화가 중단됐다. 그는 열여덟 고교생이던 1950년 8월에 징집돼 겪은 6·25전쟁과 이후의 삶을 증언했다. 이날 녹화는 전쟁기념관이 6·25전쟁 70주년이던 지난해부터 참전용사의 구술 영상을 녹화해 인터넷에 공개하는 ‘오픈 아카이브’ 사업에 따른 것. 공식 문헌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는, 전쟁으로 파편화된 개인의 삶을 역사에 남기는 작업이다.

류 씨는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1기로 미군 7사단 17연대 소속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징집 한 달 뒤인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거치며 많은 미군과 한국군을 돌봤다. 그해 11월 21일 그의 부대는 38선을 넘어 압록강변 혜산진에 이르렀다. 강의 얼음을 깨 먹으며 통일의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행복은 사흘 만에 산산조각 났다.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중국군이 연합군의 퇴로까지 막아버렸다.

최악의 상황은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였다. 영하 35도의 혹한 속에서 적군과 싸워야 했다. 중국군의 야간 공격에 부상당한 동료들을 후송할 틈도 없이 후퇴해야 할 정도로 긴박했다. 날이 밝고 다시 찾은 전투 현장에는 부상을 입은 동료들이 앉은 채 얼어 죽어 있었다. 그는 많은 전우의 죽음을 뒤로하고 살아남은 게 부끄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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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8월 전역 후 막일을 전전하다 1958년 대구 미8군 병원에 취업했다. 2004년까지 같은 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살았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친 미군 병사들에게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일했다. 아흔에 가까운 지금도 미군 병원 응급실에서 매주 2, 3일씩 봉사를 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그는 기자에게 “국민들이 먼저 간 전우들의 희생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구술을 통해 생전 내가 겪은 일을 최대한 알리는 게 내 마지막 임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류 씨와 같은 6·25 참전용사 생존자는 지난해 8만4000여 명에서 지난달 6만900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으로 대한해협해전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지난해 7월 구술에 참여한 뒤 이달 8일 별세했다. 그는 구술 영상을 통해 “후대가 행복하게 살 땅,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 달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기념관은 최 대령을 포함해 육해공군 창설 주역이자 참전용사인 3인의 구술 영상을 지난해 10월 인터넷에 공개했다. 올해는 19일까지 류 씨를 포함한 참전용사 4명의 구술을 녹화했다. 각각 10∼15분 분량의 영상으로 제작될 이 구술 자료는 올 11월 공개된다. 기념관은 구술 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참전용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유산으로 남길 계획이다.

참전용사 구술은 6·25 전쟁사의 빈 곳을 메워줄 중요한 자료다. 특히 인생 말년에 남기는 구술은 평생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 참전용사들의 생각을 담은 역사 유산이라는 평가다.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참전용사들의 구술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과거 전쟁의 주체였다가 점점 잊혀진 이들을 국가가 예우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참전용사#임무#자료#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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