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마주 같은 ‘和陶詩’ 현실선 부관참시 빌미 돼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입력 2021-07-08 03:00수정 2021-07-08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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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20〉오마주의 결과
영화 ‘싸이코’(왼쪽 사진)와 ‘드레스드 투 킬’에서 사건이 해결된 뒤 범인의 심리를 설명하는 정신건강의학자. 드레스드 투 킬이 싸이코를 오마주한 장면이다. 동아일보DB
‘화도시(和陶詩)’는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한 작품을 말하는데, 운자(韻字)를 따라 쓰는 방식으로 도연명 시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표현한다. 영화에서의 오마주와 비슷하다. 조선시대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다음과 같은 ‘화도시’를 남겼다.




도연명의 ‘술주(述酒·술을 이야기하다)’ 시는 본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김종직은 송나라 탕한(湯漢)의 주석을 통해 이 시가 유유(劉裕)에 의해 시해당한 남조(南朝) 진(晉)나라 공제(恭帝)를 애도하는 내용임을 확인하고, 도연명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이 시를 썼다. 특히 유유의 아들이 손자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덧붙여 유유의 악행에 대한 천리(天理)의 보응(報應)을 부각시켰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년)로부터 영감을 얻어 ‘드레스드 투 킬’(1980년)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히치콕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서 성도착이란 주제와 히치콕 특유의 영화기법이 활용됐다. ‘싸이코’에서 노먼 베이츠의 내면에 죽은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드레스드 투 킬’에는 엘리어트 박사의 내면에 보비라는 여성이 존재하며,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1958년)에서의 미술관 장면을 연상시키는 미행 장면이 나온다. 두 영화 모두 살인범이 밝혀진 뒤 정신건강의학자가 등장해 범인의 이상 심리와 행동을 해설한다. ‘술주’ 시처럼 영화도 주석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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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드 투 킬’은 ‘싸이코’를 단순히 모방한 작품은 아니다. 드 팔마 나름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점이 오마주로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김종직 역시 도연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를 썼다. 도연명이 폭군 유유의 보복을 염려해 에둘러 표현했던 것과 달리 김종직은 직설적으로 유유의 왕위찬탈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 점이 김종직 사후 문제가 되었다. 이 시가 세조를 유유에 빗댄 것으로 해석돼 ‘조의제문(弔義帝文)’과 함께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빌미가 된 것이다. 그의 시신은 무덤에서 파헤쳐져 참수되는 극형(부관참시·剖棺斬屍)을 받았다. 오마주가 야기한 비극적 결과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영화 오마주#부관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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