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선택 女부사관, 사망 한달前 軍상담관에 ‘죽음 암시’ 문자

신규진 기자 입력 2021-06-03 03:00수정 2021-06-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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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외부기관서 2주 정신과 진료
“극단 선택 징후없다” 의견만 듣고 20일간 추가 상담 조치없이 방치
軍, 블랙박스 확보하고도 부실수사… 사건 15일 뒤에야 가해자 첫 조사
“여군숙소 침입 신체-속옷 불법촬영”… 軍인권센터, 공군 다른 성범죄 폭로
공군 부사관 성추행 가해자 구속 수감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모 중사가 2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압송되고 있다. 장 중사는 이날 구속영장이 발부돼 미결수용실에 구속 수감됐다. 국방부 제공
공군의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군이 부실 수사와 허술한 피해자 보호관찰 등 엉터리 대응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불구속 수사로 일관해온 군은 파장이 커지자 사건 발생 석 달 만에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사망까지 20일간 군 상담 전혀 없어

2일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피해자인 A 중사는 4월 15일 20전투비행단 성고충상담관에게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군 외부 상담을 원했던 A 중사는 이후 충남 서산시 성폭력상담소에서 2주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A 중사 소속 부대는 상담 종료날인 4월 30일 “극단적 선택 징후가 없었다”는 상담소 의견만 듣고 A 중사가 지난달 21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20일간 추가 상담 등 관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건 초기 상부 보고나 수사도 부실했다. A 중사는 성추행 사건 다음 날인 3월 3일 오전 전날 함께 회식을 했던 상관(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으나 이를 전달받은 B 준위는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A 중사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B 준위는 이날 오후 9시 50분경에야 대대장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군 경찰은 지연 보고를 인지하고도 이에 대한 수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군 경찰은 강제추행이 이뤄진 차량 블랙박스에서 “하지 말아 달라. 앞으로 저를 어떻게 보려고 이러느냐”며 저항하는 A 중사 음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가해자인 장모 중사는 사건 발생 15일 뒤인 3월 17일에야 처음 조사를 받고 5전투비행단으로 이동 조치됐다. 당시 장 중사는 A 중사가 진술한 피해 사실 중 일부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증거인멸과 회유 등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불구속 수사가 이어진 것이다. 군 검찰은 A 중사의 사망 열흘 뒤인 지난달 31일에야 장 중사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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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해자 등의 회유, 협박이 있었다는 온라인 폭로글을 서욱 국방부 장관 등 수뇌부가 지난달 25일 보고받고도 부실 수사로 일관한 해당 부대에 수사를 계속 맡긴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군은 파장이 커지자 1일에야 국방부 검찰단으로 뒤늦게 수사 주체를 바꿨다. 또 해당 부대는 A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당일 국방부에 ‘단순 변사’로 사건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검찰단은 2일 장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영장은 발부됐다. 서 장관은 이날 A 중사가 안치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에게 “A 중사와 같은 딸 둘을 둔 아버지다. 딸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낱낱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 여군 불법촬영 하사, 한 달 뒤에야 분리 조치

이런 가운데 공군 부사관이 여군들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한 사건을 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다는 폭로도 나왔다. 19전투비행단 군사경찰 소속 C 하사는 지난달 4일 여군 숙소에 무단 침입해 여군들의 속옷과 신체를 불법촬영하다 현장에서 적발됐다.

C 하사의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와 휴대전화에는 장기간 여군들의 속옷과 신체를 촬영한 다량의 불법촬영물이 정리돼 있었다. 여군과 민간인 등 피해자만 1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권센터는 2일 부대가 C 하사의 전역이 8월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아온 C 하사는 2일 폭로가 나온 뒤에야 부대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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