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비극 [임용한의 전쟁사]〈162〉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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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이 전쟁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자 바로 다음 날 1차 중동전이 발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충돌은 그 이전인 1920년대부터 지속됐다. 19세기 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이곳은 오스만 제국 치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는 영국 위임통치 지역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소박하고 순박한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지 못했고,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운동도 너무 늦게 일어났다. 1930년대 저명한 지도자였던 알 후세이니는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논리에 따라 독일로 건너가 히틀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1차 중동전이 발발했을 때, 팔레스타인은 국가적인 결속을 유지할 정치적 지도력도 조직도 없었다. 알 후세이니와 측근들은 외국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군사조직을 통합해 국방군을 조직했다. 팔레스타인은 그런 조직도 없다시피 했고, 게릴라 민병대 조직조차 미약한 수준이었다. 1차 중동전은 팔레스타인 보호 명분으로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군과 의용군인 아랍해방군 조직이 전쟁을 주도했다. 아무도 진심으로 팔레스타인을 도울 마음은 없었다.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을 병합하려고 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원했던 나라가 있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그 사이에 이스라엘은 영토 내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몰아내고 마을을 파괴했다. 그 과정에서 ‘못된 짓’도 많이 했다. 파괴한 마을이 존재했던 기억을 지웠다. 지금도 이스라엘 곳곳에는 그때 사라진 마을 터가 나무뿐인 동산, 도로변의 공터, 묘지 등으로 남아 있다. 옛 지도와 대조하지 않으면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강자의 폭거도 비난해야 하지만, 약자의 비극도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약자가 되어 비난하기보다는 약자가 되지 않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임용한 역사학자
#약자의 비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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