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백신 생산기지 한국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1-05-15 03:00수정 2021-05-1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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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2010년 3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수장으로 복귀하며 던진 화두다. 얼마 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지하층에 만들어진 실험실에 임직원 12명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발표된 삼성그룹 ‘5대 신(新)수종 사업’에 바이오·제약이 포함됐고 이듬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출범했다.

▷당시 삼성그룹 안팎에선 “100년 이상 앞선 세계적 제약회사들을 따라잡긴 어렵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택한 1단계 전략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이었다. CMO는 반도체로 치면 미국의 팹리스(설계전문업체) 의뢰를 받아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해주는 대만의 TSMC와 같은 비즈니스다. 반도체처럼 공정관리가 생명인 대형 장치산업이어서 삼성의 기량이 충분히 통할 것이란 이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는 36만4000L의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위 CMO다.

▷삼성바이오와 미국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 측은 “확정된 바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공시를 냈지만 이전 비슷한 소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했던 것과 온도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이 백신동맹을 논의한 직후 계약 내용이 공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를 이용한 모더나의 첨단 백신은 화이자 백신과 함께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된다. 모더나로서도 삼성바이오와 손잡으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어 유리한 게임이다. 다만 한국에 당장 모더나 백신이 공급되긴 어렵다. 모더나에서 원료를 받아 후반 작업만 한다면 시점이 앞당겨지겠지만 생산설비를 새로 까는 데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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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미 미국 노바백스 기술을 이전받아 경북 안동 공장에서 6월부터 백신을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바이오의 계약까지 성사되면 한국이 동아시아의 ‘백신 생산 허브’로 도약할 기회가 된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만큼 백신 생산 능력을 갖추는 건 국가경쟁력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문제다.

▷선진국에 앞서 한국이 백신을 개발했다면 좋았겠지만 기초역량과 투자 규모의 차이를 고려할 때 금세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바이오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백신 생산 위탁기지로 주목받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경제의 최대 장점인 빠르고 정확한 대량생산 능력이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의 생명을 코로나19로부터 구하길 기대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백신#생산기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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