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헌재]되찾은 심석희의 웃음 그의 힘을 믿는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입력 2021-05-12 03:00수정 2021-05-1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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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쇼트트랙 여왕’으로 불렸던 심석희(24)는 지난해 이맘때 선수로서, 또 여자로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허리 부상 등이 겹쳐 수년간 달아 왔던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그리고 자신을 폭행하고, 성폭행까지 한 전 국가대표 코치와의 법정 다툼 속에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런 그가 작년 봄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의 모델로 발탁된 것은 적지 않은 파격이었다. 나이키는 ‘우리의 힘을 믿어’라는 슬로건과 함께 심석희를 대표 모델로 내세웠다. 광고 속 심석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활짝 웃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과연 심석희는 저렇게 환하게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중학생 때부터 세계적인 선수로 떠오른 심석희지만 웃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2014 소치 겨울 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유력한 3관왕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금메달은 여자 3000m 계주 한 종목에서만 땄다. 월드컵 내내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던 여자 1500m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충분히 좋은 성적이었지만 그는 “많은 분들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2018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도 불운은 계속됐다.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폭행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고, 1500m에서는 미끄러지면서 예선 탈락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합작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힘들었지만 잘 버텨 온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살짝 건드려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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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심석희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심석희는 9일 끝난 2021∼2022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내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된다. 심석희는 경기 후 “힘들 때 도와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부활을 도운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지난해 서울시청에 입단한 그를 위해 서울시는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빙상장이 문을 닫았던 지난해 서울시는 목동 주경기장 안에 실내 트레이닝 시설을 만들어 선수들이 체력 훈련을 하도록 도왔다. 서울 목동빙상장 관계자들은 세심하게 그를 살폈다. 경기를 앞두고 훈련할 때면 실제 경기처럼 조명을 환하게 켰다. 일반인 대관으로 울퉁불퉁해진 얼음도 깨끗하게 정빙했다. 윤재명 서울시청 감독은 “석희가 몰라보게 밝아졌다. 즐겁고 재미있게 훈련했다”고 했다.

예전부터 심석희는 ‘연습 벌레’였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시켜서 하는 운동의 한계에 부딪혔다. 그런데 요즘엔 스스로 알아서 운동을 한다. 목표를 정한 뒤엔 쉬는 날에도 스스로 나와 훈련을 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좋을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한결같이 힘이 되어주는 팬들이 있었다.

심석희는 정말 오랜만에 빙판에서 활짝 웃었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뒤엔 힘껏 주먹도 내질렀다. 조용하고 수줍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년 올림픽 무대에서도 그의 주먹질과 웃음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의 힘을 믿는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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